17일로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북일 정상회담이 1주년을 맞는다.북일 관계와 동북아시아 안보질서를 일거에 바꿀 것으로 기대됐던 평양 정상회담은 그 뒤 1년간 이어진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을 둘러싼 정세변화로 빛을 잃고 있다.
당시 평양선언은 경제협력 방식의 과거청산 핵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한 모든 관련국과의 합의 준수 미사일 발사유예 등에 합의하고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를 천명했다.
그러나 직후인 10월16일 미국측이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위한 우라늄 농축을 시인했다"고 발표하면서 북일 관계는 다시 악화하는 북미 관계에 종속되며 얼어붙기 시작했다.
여기에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일본 국민에게 준 충격으로 급격히 반북 여론이 조성됐다.
가족을 북한에 남겨둔 채 피랍 생존자 5명이 귀국했고 사망자 8명의 진상이 불분명한 가운데 10월 29∼30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국교정상화 교섭이 재개됐지만 납치와 핵 문제로 결렬 수순을 밟았다.
1992년 11월 8차 교섭에서 일본이 미국의 주문으로 북한 핵 의혹을 제기하고 납치문제 조사를 요구해 교섭이 장기 중단됐던 상황으로 돌아간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급속한 북일 관계개선에 제동을 걸기 위해 핵 의혹을 제기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2003년부터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와 보조를 맞추며 '대화와 압력'을 동시 구사하는 대북 정책으로 기울었다. 8월 27∼29일 중국의 베이징(北京)에서 6자회담이 열리고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양자 접촉도 이루어졌지만 뚜렷한 진전은 없었다.
북일 정상회담 후 1년의 과정은 북한 핵과 북미 관계의 해결 없이는 북일 관계의 진전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또 납치문제의 경우 가족 추가 귀국, 사망자 경위 진상규명, 추가 피랍의혹 등 어디까지가 해결의 끝인지를 상정하기 어려운 인권문제라는 점에서 일본과 북한 정부 양측에 모두 큰 부담으로 남을 것이 확실하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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