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등산 모임에 나갔다가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작년부터 강원도에 가 농사짓는 친구가 옥수수를 잔뜩 삶아 와 맛있게 나눠 먹으며, 늦깎이 농사꾼의 '실패담'에 귀를 기울였다. 그 중에도 지난봄 배추농사 지어 60여만원 벌었다는 얘기는 옥수수를 얻어 먹기 미안하게 하였다. 300평 배추밭에서 얻은 수입은 120여만원이라 했다. 비료 농약 박스값 등을 제하고 남은 게 60만원이었다. 새벽 다섯시부터 온종일 밭에 나가 살다시피 애쓴 노동의 대가로 그 돈은 너무 적다는 생각에 모두가 동의하였다.■ 어찌 배추농사뿐이랴. 아무리 농기계가 발달하고 농지가 잘 정리돼 있다고 하지만 농사란 기본적으로 노동 집약적인 1차 산업이다. 모내기에 앞서 겨우내 굳어진 땅을 갈아엎고 모를 심는 일은 농기계가 해준다고 치자. 그러나 써레질은 소를 몰고 논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논을 매거나 비료주기 농약치기 같은 일도 마찬가지고, 추수 일도 피할 수 없는 육체노동과 끝없는 잔손질을 요구한다. 벼를 말려 도정해 용기에 담아 저장하기, 장에 내기 등 농번기 이후의 일들도 근면과 잔 신경과 힘든 노동을 요구한다. 농사는 그렇게 고달프고 표도 안 나는 노동과 허드렛일의 연속이다.
■ 그렇게 애써도 농사는 마음먹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일기가 고르지 못하면 온갖 노력이 허사다. 올해는 모내기 철에 물 걱정이 없어 농사가 순탄하리라 했다. 그러나 여름 내내 비가 오고 기온이 낮아 농민들은 벼 이삭이 제 때 패지 않는다고 애간장을 태웠다. 수확을 하나마나라면서 벼논을 갈아엎는 농민도 많았다. 그러다가 태풍 매미의 습격을 받고는 쓰러진 벼를 일으켜 묶어 세울 의욕도 잃은 듯하다. 다 키운 과일이 반 넘게 떨어진 과수농민과 식구 같은 소 돼지를 잃은 축산농민들의 수심 찬 얼굴에 초점 없는 원망의 빛이 역연하다.
■ 그런 재앙은 하늘의 뜻이려니 하고 내년을 기약할 수도 있지만, 바다 건너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너무 절망적이다. 농업시장 개방을 주제로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는 선언문 채택에 실패하고 폐막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농업시장 개방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는 것을 모를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것을 막아보겠다고 반대운동을 주도하던 이경해 전 한국농업경영인 중앙연합회 회장의 죽음을 비웃듯, 강대국들은 시장개방 선언시기만 조금 늦추었을 뿐이다. 내 나라 농민을 위해 다른 나라 농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힘의 논리에 기가 막힐 뿐이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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