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의 말 못할 고민과 애환을 외면하는 사회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우리들끼리 하는 농담이 있어요. 만일 성적 취향을 바꿀 수 있는 약이 개발된다면 동성애자의 99%는 그 약을 먹을 것이라고요. 그 만큼 힘든 게 동성애자로서의 삶이지요."1990년 중반부터 국내 최초의 대학 동성애자 모임 '컴 투게더(연세대)'를 이끈 문화평론가 서동진(36) 씨가 지난 2일 법정에 섰다.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된 '동성애 사이트'를 구하기 위한 것. 그는 법정에서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뒤 "동성애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을 토로하고 건전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정에서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밝힌 사실만으로도 세인의 관심을 끌만 했지만 그의 심정은 여전히 답답한 듯 했다. "우습지 않아요. 동성애자 축제나 집회에 가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떳떳하게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동성애자가 법정에 섰다는 사실만으로 '일그러진 영웅'을 만들려 하니까요. 마치 현대 문명 사회에 들어온 겁 없는 원주민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스스로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죽음과 같은 고통에 맞닥뜨리게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성적 취향을 인정하지 않거나 부인하려고 합니다. 가사(假死) 상태에 빠진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고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서씨가 법정에 서면서까지 동성애자의 목소리를 낸 것도 함께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함이다. 또래나 다른 집단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동성애자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데, 그런 만남을 쉽고도 자주 가질 수 있는 길이 바로 인터넷이다. 폐쇄된 동성애 사이트를 살릴 수 있다면 '만남의 공동체'를 지켜내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서씨는 성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동성애를 열망한다고 해서 동성애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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