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문학에 대한 관심을 되살릴 수 있을까.중ㆍ단편 소설 100권을 만화로 옮기는 대형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도서출판 이가서는 국내 대표작가 100명의 주옥 같은 중ㆍ단편 소설 100권을 내년 말까지 만화로 만들 계획이다.
‘문학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문학의 침체를 부른 주범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만화가 문학을 구원하러 나선 셈이랄까. 소설의 만화화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만화로 옮기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어서 문학ㆍ만화계 모두 큰 모험으로 여기고 있다.
1차로 이 달 중순까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 박완서의 ‘옥상의 민들레꽃’,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이 나온다.
출판사측은 또 공선옥, 구효서, 김성동, 박범신, 박영한, 송영, 윤흥길, 이창동, 이호철, 최일남, 한승원, 황석영 등 42명의 작가가 만화 출간에 원칙적으로 동의했으며 현재 이 작가들과 만화로 옮길 작품을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승철 편집장은 “아무래도 독자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을 선택하고 싶지만 작가들은 그림으로 잘 표현될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출판사측은 독자들의 반응을 봐가며 추가로 50여 작가의 작품을 만화화 할 계획이다.
문학을 만화로 옮기는 것이 과연 있을 법한 일인가. 과거에는 ‘만화는 저급한 장르’라는 생각에서 부정적인 견해가 무성했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소설을 TV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하는 것과 만화로 만드는 것에 차이를 두지 않으며, 오히려 문학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는 게 출판사측 설명이다. 자신의 작품이 만화로 옮겨지는 것에 대해 다소 부담스러워 하던 일부 작가도 곧 수긍했다는 것.
만화화의 원칙은 소설 원작에 최대한 가깝도록 한다는 것이다. 글로만 된 소설을 그림과 대사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만화적 각색은 불가피하지만 이를 최소한으로 하고, 원작자의 의도를 충실히 살린다는 얘기다. 만화화 작업은 젊은 만화가 80여명의 모임인 ‘스튜디오 꾼’이 맡고 있다.
‘꾼’의 스토리작가 김승렬씨는 “순수 문학은 대화보다는 내적인 독백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만화로 각색하기 어렵다”며 “추상적 묘사를 구체적 장면으로 바꾸는 데 만화가의 상상력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구효서씨는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은 어느 정도 틀이 잡혀 있지만 만화로 옮기는 것은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에 걱정과 불안이 없지 않다”며 “이번 작업은 1회성의 순수 문학이 만화를 통해 다시 읽혀지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출판사측은 만화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출품, 만화를 통해 우리 문학을 세계에 알린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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