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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북 공단 태풍피해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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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북 공단 태풍피해 르포

입력
200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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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분수령으로 경기침체의 긴 터널을 뚫을 첨병으로 기대를 모았던 경남·북 공단지역. 하지만 이 역시 태풍의 위세에 비껴서지 못한 채 휘청거리고 있다. 일부 공단은 해일로 공장시설에 바닷물이 들어와 시설복구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전망이다.

1970년 국내 최초의 외국인 전용공단으로 조성된 경남 마산시 양덕동 마산자유무역지역. 수출 납기에 쫓겨 추석연휴조차 반납하고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던 생산라인은 시커먼 개펄을 덮어 쓴 채 멈춰 있었다.

공장이 파손되고 원부자재 및 완제품이 바닷물에 잠기면서 급거 복귀한 1만3,000여 명의 근로자들 손에는 스패너 대신 삽과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한국동광 무역과장 김홍도(46)씨는 "자유무역지역 설립 이후 이렇게 황당한 일은 처음"이라며 아예 말문을 닫았다.

반도체 및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이 공장은 생산설비에서부터 중간제품과 완제품, 원자재 등 공장 전체가 침수돼 300여명의 근로자들은 하루종일 수해복구 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짠 물이 닿은 시설과 제품은 사실상 폐기처분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여서 근로자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한국소니(주)도 핵심 생산라인인 옵티컬 픽업 라인이 송두리째 물에 잠기고 출하를 앞둔 홈시어터 등 완제품 부품창고가 침수됐으며,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티엠씨도 생산설비와 휴대폰 완제품 3만여 개가 침수돼 120억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하는 등 자유무역지역 입주업체의 단순 침수피해액만 2,400억원에 달하고 있다.

자유무역지역관리원 수출산업과장 김지호(52)씨는 "79개 입주업체 중 54개 업체가 완전 침수되고 나머지 업체도 부분 침수피해를 입었다"며 "입주업체 대부분이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있어 사상 최대의 산업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마산=이동렬기자 dylee@hk.co.kr

■ 대구 달성공단

320여 입주업체 가운데 60여 업체가 매몰·침수돼 150억원 이상의 피해가 난 대구 달성군 달성산업단지. 산사태 피해를 본 공장들은 수해 사흘이 지난 15일까지 집채만한 바위 더미에 묻힌 채 방치돼 있었다.

자동차엔진 실린더헤드 등을 생산하는 남선산업부터 위쪽으로 난 400여m가량의 폭 8m 도로 역시 2.5m 높이로 바위와 자갈이 뒤덮은 상태다. 도로 폭이 좁은데다 외길이어서 굴삭기 한대로 걷어 내다보니 도로개통에만 앞으로 3, 4일은 더 걸릴 것이라고 공단 관계자는 푸념했다. 바위덩이를 치운 곳곳에는 파손된 차량이 나뒹굴고 있고 검붉은 흙탕물과 아스팔트 더미가 길을 막고 있었다. 추정 피해액만 최소 40억원이라는 남선산업 관계자는 "중장비를 투입할 수 없어 사무동 1층 천장까지 찬 자갈을 종업원들이 손으로 일일이 치우고 있다"며 "공장을 다시 가동하려면 3개월은 넘게 걸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남선산업과 나란히 선 대덕직물, 화진섬유 등 20여 업체는 차량 진입조차 불가능해 아예 복구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브레이크 패드 생산업체인 (주)산도산업 관계자는 "사무동이 바위더미에 묻히고 대당 7,000만원 하는 정밀기계 20여대가 흙탕물에 잠겨 정상가동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달성산업단지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당장의 설비와 매출손실도 크지만 대부분 중소 하청업체여서 복구가 장기화할 경우 원청업체가 거래처를 바꿀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정상가동이 이뤄지면 안정적인 거래가 재개되도록 당국에서 도와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 부산 녹산공단

"치워야 할 쓰레기도, 납기에 대야 할 주문도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일손은 없고, 마음만 급해 정신이 없습니다."

강풍과 해일로 공장지붕이 날아가고 정밀기계와 반·완제품 등이 침수돼 40억원 상당의 피해를 본 부산 강서구 녹산국가산업단지내 유리제조업체인 J사 직원들은 "악몽의 순간을 잊으려고 사흘째 복구작업에 매달리고 있지만 공장 재가동까지는 기약조차 없는 형편"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인근 K냉동공장도 냉동창고 지하 1,2층이 침수돼 원료와 제품, 기계류 등 30여억원의 피해를 입은 채 직원 30여명이 공장 가득한 진흙과 모래를 치우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770여 입주업체 가운데 피해를 입은 업체는 줄잡아 200여 곳, 해안에서 600여m 안쪽까지 몰아 닥친 해일에 해안가 업체들의 피해는 치명적이었다.

공단 주변 간선도로 곳곳도 해일에 밀려 온 모래가 쌓여 있지만, 자원봉사자나 군장병 등 공공 수해복구 인력·장비가 대부분 주거지역에 쏠리면서 공단 복구는 직원들 손에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처지. 마음은 급한 데 일은 더뎌 직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나마 '우는 소리'조차 마음 놓고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들렸다. 녹산공단 관리단 관계자는 "피해사실이 알려질 경우 금융권 등이 채권회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드러내놓고 하소연도 못한다"며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고 울먹였다.

/부산=김창배기자 kimc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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