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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心은 "태풍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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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心은 "태풍전야"

입력
200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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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군 석곡면에서 수출용 배를 재배하는 정복기(43)씨는 요즘 말을 잃었다. 수천만원의 농가 부채에 시름하던 정씨는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해주던 과수 농사마저 접어야 하는 상황이다. 정씨는 "여름 내내 내린 비로 흉작이 예상됐는데 남아있던 것마저 태풍에 날아갔다"며 "빚더미에 깔려 죽게 생겼다"고 탄식했다. 태풍 매미가 휩쓸고 간 경남 합천군 농민회 김종일 사무국장은 "12월이면 그 동안 유예됐던 농가부채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데 태풍 때문에 농사를 완전히 망쳐 갚을 길이 없어 모두들 망연자실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농업시장까지 개방되면 우리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고, 이제는 투쟁 밖에 남은 길이 없다"고 한탄했다.잇단 악재에 농민들의 울분과 분노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계속된 여름 비로 인한 흉작에다 태풍 피해까지 겹쳤다. 농업시장 개방문제를 다룬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정부가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고 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회장 이경해씨의 자살까지 겹쳐 농심(農心)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농림부에 따르면 태풍으로 침수 피해를 본 농경지는 15일 현재 3만258㏊, 죽은 가축은 21만6,000여마리에 이른다. 비닐하우스 파손, 과실 낙과 등으로 농민 실질 소득은 더욱 줄어들고, 쌀 수확량은 지난해에 비해 20%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여기에 WTO가 연말까지 특별각료회의를 개최, 시장 개방을 확정한다는 방침이 전해지자 농민과 농민단체들은 "한국 농업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며 절규하고 있다.

농민과 농민단체들은 이 같은 농촌 현실 타개를 위해 9월부터 연말까지 대대적인 대정부 투쟁을 벌일 예정이어서 상당한 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한농연 등 9개 농민단체가 모인 '전국농민연대'는 이경해 전 회장의 유해가 도착하는 18일 이후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전농 관계자는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촛불시위, 대정부 규탄집회 등을 통해 FTA 비준 반대와 WTO 협상에서 농업 부문 제외 등의 요구안을 관철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농민연대는 또 9월 정기국회에서 농업재해보상법, 농가부채대책법 등 5대 농촌대책법 통과를 요구하고, 11월 중에는 농업개방 저지를 위한 전국 농민대회 개최도 준비 중이다. 전농 이수현 정책부장은 "농업철학이 없는 현 정부에 대한 기대는 이미 접었다"며 "농업을 진정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정부는 우선적으로 농민들에게 재생산이 가능한 태풍 피해 복구비용을 지원하고 농가부채 이자율 인하, 농업시장 개방 계획 철회 등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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