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가족'에 대해 심히 불만은 많았으나 영화제에 출품됐다는 소식에 잠시 주눅이 들어있던 관객들이 일제히 불만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매우 불쾌했고, 더욱이 작품성을 인정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얼마전에는 "내가 영화를 몰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이라는 겸양의 수식어가 간혹 붙기도 햇으나, 이젠 그런 것도 없다.대개 이런 불평을 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안정적 가정을 꾸리고 있는 건실한 가장인 경우가 많다. 반면 여성, 특히 미혼 여성은 영화에 대해 참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경우로 신뢰도는 50±50%이다!
평론가들이 전폭적 지지를 아끼지 않는 영화에 대해 대중이 반발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처럼 성별과 결혼유무에 따라 확연히 지지도가 엇갈리는 경우도 드물다. 남성들은 영화 속에서 철저히 패배자들이다. 아버지 김인문이 죽을 때 아들의 셔츠에 피를 토하는 대목은 '더러운 가부장제의 피가 유전된다'는 상징적 의미다 등등의 수 많은 분석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상황이 속시원히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남성들이 가장 싫어한 것은 아마 영화 속 여자들의 '쿨'함 때문은 아닐까. 쿨한 여자를 '남의 여자' 혹은 '잠시 나의 여자이면 좋겠으나, 영원히 나의 여자라면 곤란한 여자'의 특성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내일 하는 남편을 병원에 높혀두고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이 난 시어머니가 "그래도 니 아버지가 불쌍한 사람"이라는 말 한마디만 해주었어도 10점은 올라갔을 것이다. 여기에 '맞바람'난 아내 호정이 바람핀 남편의 가슴을 두어 차례 때리며 "그래도 당신을 사랑했다. 나도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했어도 30점은 올라갔을 텐데. 그러나 영화 속 여자들이 이런 기대와 달리 너무나 '쿨'한 데다가, 행여 사랑스러운 아내가 이 '못된 여자들'에게 한치의 동정이라도 보낼까 싶어 우리의 건실한 가장들은 화가 난 것일 수 있다. 그 '뻔뻔한 여자들'이 응징 당하지 않는 모습에 더욱 화가 났을 법하다.
그러나 우리의 건실한 가장들이여, 영화가 그대를 속일 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지니. 당신들 곁엔 설령 남편 앞에선 입이 댓발이 나왔을지라도 추석 연휴, 시가에서 몸이 무서져라 일하는 (또는 그런 시늉을 하는)아내가 있지 않은가. 영화는 그저 바람같은 것이다. 상대가 없는 일방적 바람.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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