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중추절은 중노절(重勞節)금년 추석에도 아내들은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중추절이 아닌 중노절을 보낸 셈이다. 완전히 아내 몫인 명절날의 중노동을 가장 심하게 겪은 여성은 전업주부보다 맞벌이 아내. 맞벌이 아내는 직장생활에 시달리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계속 가사노동에 얽매어 있다. 그런데도 전업주부들은 맞벌이를 부러워 한다.
물론 세계적으로 이상적인 부부상은 맞벌이로 되어 있다. 경제적 문제 외에 여성이 결혼 후에도 꿈과 능력을 살리는 길은 맞벌이이니까. 그런데 밖에서 힘겹게 일하는 맞벌이 아내가 집에 들어와서도 같은 양의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은 이상적 부부라는 맞벌이에 회의를 느끼게까지 한다. 맞벌이 아내가 명절 중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간단하다. 남편이 요리를 배우면 된다. "직장 일도 힘든데 요리라뇨?" 라고 볼멘소리 하지 말라. 아내도 직장이 있으면서 가사노동을 도맡아 오지 않았는가?
목구멍은 포도청 아닌 관광청
원터치 부엌. 비행기의 조종석처럼 만들어진 원터치 부엌을 이 나라 아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부엌 문제만 해결하면 여성 문제의 어느 부분이 해결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아직도 아이디어 수준이지만 원터치부엌의 꿈은 성취하고 싶은 나의 드림 리스트에 미결사항으로 남아 있다. 부엌은 아내의 노동현장이다. 맞벌이 아내에게는 중노동의 현장이다. 원터치부엌은 나중 문제고 남편이 요리를 배우면 아내의 가사 중노동은 해결된다.
더구나 요리는 이제 사랑이다. 어려웠던 시절, 목구멍이 포도청이던 시절에는 요리를 한다는 것은 노동에 불과했다. 분명히 만드는 즐거움이 있는 요리가 노동으로 평가되는 시대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가난한 시대에 속한다. 반대로 요리를 하는데서 창조적인 즐거움을 찾고, 같이 나누는 데서 인간관계의 중요한 고리를 찾는다면 이윽고 요리는 노동의 수준에서 사랑의 수준으로 승격한다. 가난할 때는 '목구멍이 포도청'이지만 세계 곳곳으로 다니며 요리를 즐기는 풍요의 시대에는 '목구멍이 관광청'이 된다. 우리도 '목구멍이 관광청' 수준에 왔다. 그런데도 맞벌이 남편 가운데 요리를 할 줄 모른다면 자격 미달이다.
최소한 10개의 자신 있는 메뉴를
부엌은 남자가 들어가면 안 되는 곳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 시절엔 남편과 아내 사이는 멀고 멀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뭐가 떨어진다'고 까지 했다. 그러나 부엌에 들어갔다가 그거 떨어진 남자는 지구상에 아직 없다. 때로 부엌에 들어가 어수룩한 솜씨로 빈대떡이나 수제비를 만들었더니 맞벌이 아내가 그렇게 좋아 할 수 없더라는 어느 30대 과장의 고백은, 맞벌이 남편이면 반드시 요리를 배워야 한다는 물증으로 삼을 만 하다.
요리를 하러 부엌을 방문할 적엔 가급적이면 파자마 같은 엉성한 옷을 걸치는 것이 드라마틱하다. 아니면 반대로 일류호텔 주방장 같은 차림으로 엉덩이만한 모자라도 쓰고 어색한 얼굴로 부엌을 서성거리는 남편의 모습은 아내를 이유 없이 훈훈하게 한다
맞벌이 남편은 무조건 학원에 가서 3개월만 요리를 배우라. 적어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10가지 이상의 메뉴를 보유하라. 그것이 21세기 남편의 글로벌 라이센스다. 맞벌이 아내를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킬 줄 알아야 21세기 남편이다. 맞벌이 아내는 남편의 부엌 출입 한 번을 한 차례의 키스 이상으로 달가워 할 것이다. 이왕이면 요리를 아주 잘 하는 남편이 되어야 한다.
/한국네트워크마케팅협회장 smileok@knma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