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게 외모 지상주의의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준다는 비판을 받아온 방송사의 소위 '짝짓기 프로그램'이 폐지 위기에 몰렸다.현재 대표적인 짝짓기 프로그램은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과 KBS2 '자유선언 토요대작전'의 '장미의 전쟁' 코너. 주말 저녁 편성돼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두 프로그램은 각각 남녀 연예인 간, 일반인과 연예인 간의 짝짓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연예인 짝짓기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천생연분'은 진행자인 강호동과의 재계약이 무산되면서 프로그램 간판을 내리기로 한 상태. 장태연 MBC 예능국장은 "김제동, 유재석 등을 섭외했으나 여의치 않아 프로그램을 폐지키로 했다"며 "MC 섭외가 어렵기도 했지만 '천생연분'은 강호동 없으면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는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천생연분'은 9월 27일 막을 내린다. MBC는 8일 '천생연분' 후속으로 유력시되는 변형 짝짓기 프로그램 '질풍노도 생쇼 17:1'을 파일럿(실험) 프로그램으로 내보냈지만, 첫 방송 뒤 엽기적인 게임방식과 선정성 등으로 비난이 빗발쳐 포맷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가을 개편에서 주말 버라이어티쇼를 전면 손질한다는 구상 하에 프로그램 제안 공모를 실시 중인 KBS도 '장미의 전쟁'의 폐지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진산 KBS 편성부주간은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선정적이라거나 타 방송 프로그램과 비슷하다는 등 그동안 제기됐던 비판을 상당 부분 반영한다는 방침"이라고 폐지 가능성을 내비쳤다. '자유선언 토요대작전'의 김충 PD도 "'장미의 전쟁'에 쏟아진 비난에 대해 이견이 많지만, 1년 반쯤 했으니 프로그램을 폐지할 때가 됐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쏟아지는 비판
최근의 연예인 짝짓기 프로그램은 남녀가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고 상대방과 미묘한 감정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의 엿보기 심리를 자극한다. 이로 인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도 두 프로그램이 폐지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은 역기능이 지나치게 크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단체 '미디어세상 열린사람들'은 최근 두 프로그램을 1개월 간 모니터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짝짓기 프로그램으로서의 알맹이를 상실하고 연예인들의 또 다른 게임쇼로 전락했다"고 결론지었다.
두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대부분 잘 생기거나 예쁘고 몸매가 좋은 이른바 '킹카' '퀸카'들이며, 외모가 뛰어나지 않은 출연자를 감초 격으로 끼워넣기도 하지만 대부분 외모를 이유로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는다. '미디어세상…'의 보고서는 이들 프로그램이 건전한 만남을 주선한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상대의 호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섹시 댄스' 등 외모에 한정된 매력만을 강조해 외모 지상주의 등 사회적 병폐를 부추기는 역기능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연예인들이 신곡 발표나 드라마 혹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출연해 프로그램은 이들을 띄워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며 "또 예비 연예인이 진출하는 창구로 활용되는 이들 프로그램은 연예 기획사의 입김이 작용하는 주요 공간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두 프로그램은 "출연자의 인격을 모독하고 고정화된 성의식을 강요한다"(좋은TV만들기 모니터 보고서) "아이디어 없이 연예인만 내세워 안이하게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는 등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또 '천생연분'은 여성 출연자에게 선택받지 못한 남성을 '폭탄' '덤앤더머'등의 표현으로 비하해 가학성이 심하다는 이유로 최근 방송위원회의 경고조치까지 받았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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