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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바이러스 하우리 긴급대응팀/"바이러스와 전쟁" 최전방 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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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바이러스 하우리 긴급대응팀/"바이러스와 전쟁" 최전방 지킴이

입력
2003.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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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괴롭히는 바이러스, 다 나가있어!" 괴(怪)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전국의 인터넷이 마비된 1월 25일,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바이로봇'을 만드는 하우리(www.hauri.co.kr) 사무실에는 휴일 근무를 하는 직원들이 모여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홍상수(28), 김상완(24) 주임연구원과 고객지원을 맡은 이은정(28), 이현수(28) 대리 등 일명 '바이러스 긴급대응팀'이 인터넷의 심상찮은 신호들을 추적하고 있었던 것. 뜬눈으로 밤을 지샌 이튿날 새벽, 이들은 사상 초유의 인터넷 마비사태의 원인이 바이러스임을 밝혀내고 신종 '슬래머'(Slammer) 웜의 출현을 발표했다.'회사 필요시 언제든지 근무'

이들 고객지원팀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바이러스 사고 때문에 지난 추석 연휴에도 '근무중'이었다. 전 직원이 두 조로 나눠 24시간 비상근무를 했던 지난 설에 비해 재택근무를 병행하는 이번 추석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고향을 찾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당직 근무를 위해 회사로 출근하거나 언제 울릴지 모르는 전화기를 바라보며 아슬아슬한 휴일을 보내야만 했다. 명절에는 바이러스도 활동을 멈추면 좋겠지만, 바이러스 제작자들은 남들이 쉴 때 더 왕성하게 활동하는 게 특징. 체르노빌(CIH) 바이러스, 님다(Nimda) 바이러스, 슬래머 웜 등 많은 피해를 냈던 바이러스들의 상당수가 주말이나 휴일에 첫 발생한 점이 그렇다.

명절에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인터넷이 뻗어 있는 다른 나라에서는 쉬는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바이러스가 퍼지는 속도와도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디스켓이나 불법 복제 CD등이 주된 바이러스 전파 경로였다. 하지만 최근엔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만들어진 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서 창궐하기까지는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 최근 바이러스 메일 소동을 벌였던 소빅(Sobig.F) 웜처럼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는 이미 확산을 시작한 이후에 발견된다. 휴일이라고 잠시 방심했다가는 큰일난다는 것. 이들은 이로인해 입사 서류를 제출할 때 '회사 필요시 언제든지 근무한다'는 서약까지 했다.

팀워크로 '바이러스 철벽 방어'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김상완 연구원이 먼저 나선다. 신종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하고, 치료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그의 임무. 일종의 '바이러스 사냥꾼'인 셈이다. 아직 대학생이지만 일찍이 PC통신 나우누리의 컴퓨터 바이러스 동호회 부시숍을 역임하는 등 경력 5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다 보니 한가하게 쉴 틈이 없다. "바이러스가 좋아서 시작한 일, 고생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휴일 출근을 고수하는 그의 신조다.

새로 만들어진 바이러스 백신은 '공급책' 홍상수 대리의 손을 거쳐 인터넷에 배포된다. 그는 김 주임에게서 넘겨받은 재료를 완성품으로 만들어 고객들이 받아가도록 '업데이트 서버'에 올리는 일을 맡고 있다. 홍 대리는 "아무리 백신 파일이 빨리 나와도 내가 없으면 '칼자루 없는 칼날'이나 다름없다"며 은근한 자부심을 보였다.

이은정, 이현수 대리는 고객서비스의 최전선에서 활동한다. 국가적 대응 체계가 미비한 탓에 바이러스 방재 서비스는 기업들이 도맡다 보니 별 희한한 일을 다 겪는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고객상담 전화를 걸어 '바이러스가 이렇게 창궐하는 데 정부는 뭘하냐'며 호통치는 사람, PC를 직접 들고 찾아와 고쳐달라고 조르는 사람, 심지어 컴퓨터 바이러스 만드는 법을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인터넷 지킴이'로 보람 느껴

컴퓨터와 인터넷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컴퓨터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이들의 책무 또한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명절 근무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들은 그러나 명실상부한 '인터넷 지킴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남들이 노는 휴일에 구슬땀을 흘리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은정 대리는 '1·25 대란' 직전에 결혼식을 올리는 통에 바이러스와 함께 허니문을 보냈다. 또 휴일 당직근무에 비상 근무 등으로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낼 때가 많다. 그러나 남편이나 시댁에서 서운해하는 일은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진 탓인지, 명절이나 휴일 당직근무도 잘 이해해줘서 다행이다"고 말했다.

김상완, 홍상수 두 연구원은 "철야근무, 휴일근무가 힘들 때도 많지만 수많은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자들을 바이러스의 피해로부터 구한다는 데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현수 대리 역시 "고객사 전산실에서 날을 새는 일이 허다하지만, 우리 기술을 믿고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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