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 9월15일 미국의 제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1930년 몰(沒). 태프트는 연방 판사와 필리핀 총독, 육군 장관을 거쳐 1909년부터 1913년까지 미국 대통령을 지냈다. 그의 전임자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시절부터 태프트를 거쳐 후임자인 토머스 우드로 윌슨에 이르기까지 세 대통령의 집권기는 미국사에서 흔히 프로그레시비즘의 시대라고 불린다. '혁신주의'라고 번역될 만한 프로그레시비즘은 산업자본주의의 급격한 발달로 계급간 격차가 커진 미국 사회에서 점진적 수단에 의한 사회통합을 꾀한 일련의 개혁 운동이었다. 태프트가 재임 중에 힘쓴 트러스트 규제도 프로그레시비즘의 일환이었다.한국사에서 태프트라는 이름은 열강의 제국주의와 국가이기주의를 상징하는 한 기호다. 태프트는 육군 장관으로 재임하던 1905년 7월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지시로 도쿄(東京)로 건너가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桂太郞)와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라는 것을 맺었다. 이 밀약의 골자는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승인하는 대가로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동맹국이었던 영국 외에 미국의 승인까지 받음으로써, 일본은 이미 이 때 한일합방을 사실상 이뤄냈다고도 할 수 있다.
국내 정치에서는 민주주의자의 모습을 보이는 강대국 정치인이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자의 면모를 보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예컨대 프랑스 제3공화국의 정계를 주름잡던 쥘 페리는 대내적으로는 교육 민주화와 언론 자유의 챔피언이었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식민주의의 화신이었다. 태프트도 이런 경우다. 대통령 재임 중에 그는 국내 정치에서는 분명히 민주주의자였지만, 대외적으로는 달러 외교라는 이름의 노골적 팽창주의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종속화를 꾀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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