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입니다. 연세로 보나 북한의 기아 상태로 보나 할머니(김관중)와 아버지(전창련) 어머니(김선승)께서는 이미 이 지상에 안 계시리라 믿고 이 글을 올립니다.세 분 혼백, 지금 고향인 함남 단천군 광천면 용잠리 하늘 위를 맴돌고 계신지 아니면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돌고 계신지 알 수 없군요. 그러나 저는 지금 이 순간 우리 고향 하늘 근처에 계시리라 믿고, 북쪽을 향해 앉아 이 글을 씁니다.
우선 제 마음의 꽃다발을 바칩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며느리는 한가위를 앞두고 매일 차례 상에 올릴 제수를 조금씩 사들였습니다. 물론 차례 때 오셔서 드셨겠지만, 저는 저대로 이 글을 한가위 꽃다발 예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1950년 12월 6일 점심을 먹고 넷째 숙부를 따라 국군 수도사단 공병대 김도규 대위 부대의 마지막 트럭을 타고 고향집을 떠날 때 겨우 네 살이었던 누이 분금이는 아직 57세 밖에 안 되었으니 살아있으리라고 억지로 믿고 싶습니다.
얼마 전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 중의 한 분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기민시(飢民詩)를 읽었습니다. 굶주린 백성들의 아픔을 노래한 그 시를 보니 170년 전 다산이 목도했던 비참한 모습이 북한 동포들에게 다시 반복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무엇보다 굶주리다가 돌아가셨을지 모르는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노라니 구구절절 눈물겨웠습니다. 누이야, 살아 있다면 묻고 싶다. 너희 가족은 잘 먹고 있는지…
할머니, 아버님, 어머님, 저승 혼백으로나마 평안하소서. 2003년 한가위, 손자이고 아들이며 오빠 씀.
/전태수·nahd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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