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궁중 연회는 장엄하고 화려한 종합예술입니다. 여기에는 노래, 춤, 음악 뿐 아니라 예법, 글, 음식, 술을 즐기는 우리 전통문화의 정수가 담겨 있지요."2000년부터 매년 조선왕조 궁중연회를 재현하고 있는 인남순(48) 한국전통문화연구원장이 올해는 21일 오후 2시 경희궁 숭정전에서 '영조 조 갑자 진연'을 선보인다. 이 연회는 영조 20년(1744년) 10월 4일 임금이 기로소(耆老所·왕과 정2품 이상의 문신이 모여 국사를 논의하는 기관)에 들어간 것을 축하하기 위해 대왕대비와 왕비가 베푼 잔치이다.
인 원장은 궁중연회는 단순히 왕실 가족이 먹고 즐기기 위한 잔치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궁중연회에는 예악(禮樂)의 질서로 국민을 교화하고 국가 위상을 정립하고자 한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이 들어있습니다. 악은 덕을 빛내는 것이고, 예는 정에 보답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흉년이 들거나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는 연회를 열지 않고, 연회를 열더라도 곳간을 열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과 옷을 베풀어 함께 즐겼습니다."
본래 하루 종일 계속되는 연회를 1시간 30분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이번 연회는 임금과 대왕대비 등이 자리에 앉으면서 시작된다. 이어서 대왕대비를 위해 왕과 세자 등이 술을 한잔씩 올릴 때마다 음악과 무용, 각종 의식이 어우러진다.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이 여민락만, 오현곡, 향당교주 등의 궁중음악을 연주하고 헌선도, 연화대무, 아박무, 향발무, 처용무 등의 화려한 무용이 펼쳐진다. 극적인 흥미를 더하기 위해 TV 사극 '태조 왕건' '용의 눈물' 등을 연출한 김재형씨가 감독을 맡았다. 출연진도 탤런트 전무송(영조) 이보희(대왕대비) 김영란(중전) 정태우(세자) 등을 포함해 150여 명에 이른다.
인 원장은 "이번 연회는 춤과 노래의 방식과 순서, 음식 종류와 만드는 법 등이 세밀히 기록돼 있는 의궤를 토대로 하여 원형을 복원했다"며 "이처럼 치밀하게 궁중연회를 기록한 나라는 세계에서도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러한 음악과 의상은 왕조마다 다르기 때문에 공연사, 복식사, 행정제도사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궁중 연회에서 사용되는 의상과 악기, 궁중 의물은 모두 전문가의 고증을 받아 제작했고, 영조의 탕평책에서 유래한 탕평채 등 음식도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이 직접 만들었다.
인 원장은 2000년에 자경전 내진찬(순조 29년·1829년)을 재현한 후, 2001년 함녕전 내진연(고종 36년·1901년), 2002년 세종조 회례연(세종 15년·1433년)과 사신연(세종 31년·1449년)을 복원했다. 그는 보람만큼이나 고민도 크다고 했다. 행사를 치를 때마다 막대한 경비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집을 담보로 대출도 몇번이나 받았고 빚도 많이 졌다. 인 원장은 "언제까지 '미친 짓'을 계속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한계가 있는데…. 하지만 궁중문화를 복원, 예술문화로 정착시키는 일을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내년에는 파리 유네스코 본부와 미국 무대에서도 궁중연회를 열고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국립국악원 연주원으로 일하다 78년 한국전통문화연구원을 창설한 인 원장은 지난 10년 동안 덕수궁 '한국전통문화예술제', 국립민속박물관 '우리민속 한마당' 등 상설무대를 무료로 열고 주요 TV사극의 고증을 맡아 전통문화 알리기에 앞장서왔다. 문의 (02)326-0447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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