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워낙 부유한 국가라 빈곤층도 그럭저럭 먹고야 살겠지만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어 '두 개의 미국'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 논평가는 "아주 부자인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있을 때, 그것은 완전한 정치적 다이너마이트와 같아 사회혁명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한다.바로 그런 우려 때문인지 미국 사회는 부자와 빈자의 거주 지역을 완전 분리시켜 서로 상종하지 않게끔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부자들만 몰려 사는 지역을 '벙커 도시'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만큼 보안 유지가 철저하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벙커 도시엔 외부인의 출입이 전면 금지된다. 달리 말해,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얼씬거릴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부자들을 아예 구경하지 않고 살면 빈부격차에 대한 문제의식도 약화되리라고 생각한 걸까.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두 개의 미국 사이의 거리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빈자를 전혀 구경하지 못하고 사는 부자가 통계수치만으로 제시되는 미국의 분열상에 깊이 공감하면서 그걸 완화시키려는 생각을 갖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와 빈자의 거주 지역 분리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인가. 아니다. 한국이야 땅이 좁아 벙커 도시를 많이 만드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해선 안 된다. 이른바 '강남 신드롬'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시가 6억원이 넘는 '고급' 아파트의 66%가 강남에 집중돼 있다거나 한 언론사의 유명 인사 사전에 등재된 8만5,000여 명중 55%가 강남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강남 신드롬이 거품만은 아니라는 걸 시사해준다. 서울대가 '서울강남대학교'로 변모했다는 속설도 이 지역 학군 편입을 둘러싼 처절한 전쟁을 생각하면 가볍게 흘려 넘길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강남 거주자들 가운데엔 강남 신드롬에 대해 억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지역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자식 교육을 위해 빚 내서 간신히 작은 아파트 한 채 마련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강남 신드롬은 그 누구도 원치 않은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건 성공이 성공을 낳는 '눈덩이 효과'의 산물일 수도 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강남 신드롬은 값이 비쌀수록 호사품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는 이른바 '베블런 효과'와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합리적인 대응이 도무지 먹히질 않는다.
그렇다면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상책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베블런 효과가 하위 영역에 영향을 미치듯이, 강남 신드롬은 한국 사회의 여타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서부터 대학입시 전쟁의 격화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부동산 정책 외의 다른 정책 수단도 강구해보는 게 어떨까. 우선 그 이전에 강남의 부자 밀집도가 높아지는 건 나라 전체는 물론 강남 거주자들에게도 좋지 않다는 걸 사회적 의제로 삼아 모든 사람들을 납득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가 미국에서 배워야 할 반면교사의 교훈은 부자들이 멀리 내다보고 빈자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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