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도 태풍이라면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 1959년 9월17일 남해안을 강타한 사라호다. 태풍 이동경로를 정확히 추적하지 못하던 시절 느닷없이 추석 아침에 불어 닥친 가을 태풍으로 희생된 사람만 800명이 넘었다. 초등학생 때 제주도에서 그 태풍을 경험했다. 처음에는 폭우를 동반한 강풍이 몇 시간 휘몰아 치다가 갑자기 비가 그치고 고요해졌다. 그러나 이내 태풍은 풍향을 바꾸어 몇 시간을 더 불었다. 태풍의 눈이 통과하는 모습이었다. 사라호가 지나가고 난 그날 오후 하늘은 맑디 맑았지만, 땅 위의 모든 것은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는 폐허 그 자체였다.■ 12일 남부지방을 강타한 태풍 매미도 사라호와 닮았다. 상륙시기도 9월 중순으로 전형적인 가을 태풍이고, 이동 경로 또한 사라호와 비슷했다. 순간최대풍속 초속 60m는 사상최고 기록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인명손실이 사라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다. 옛날에 비해 태풍예보가 정확해지고 방재체계가 발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태풍의 발생과 이동경로가 인공위성에 의해 추적되면서 인명손실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술문명이 기여하는 측면이다.
■ 그러나 작년에 불어 닥친 태풍 루사는 2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5조원이라는 사상최악의 재산피해를 냈다. 근래 태풍으로 재산손실이 커지는 이유는 사회간접자본과 산업시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피해노출도가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루사도 그렇고 올해 매미도 내륙 깊숙이까지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상대적으로 태풍에 덜 노출되었던 지역이 새롭게 태풍의 공격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러한 태풍의 변화를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태풍에 에너지공급이 잘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한반도 주변 수온은 급속히 상승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지구온난화에서 찾고 있다. 즉 지구기온이 올라가면 그 열을 흡수한 바닷물의 수온도 올라가게 마련이다. 온난화가 태풍에 영향을 준다는 가설이 맞다면 태풍의 변화는 일시적인 기상이변이 아니라 이런 태풍이 흔해지는 기후변화라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우리나라가 위치한 중위도 몬순 지역에 기후변화의 영향이 커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도시와 사회간접자본의 설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지 모른다.
/김수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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