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가 할퀴고 지나간 수해지역 주민들은 전기, 전화에 식수마저 끊겨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거제도는 송전철탑이 주저 앉으면서 섬 전체가 암흑 천지로 변했으며 강원, 경북 등의 일부 산간 지역 주민들도 원시인처럼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정전 정전의 피해가 가장 심한 곳은 경남 거제다. 12일 오후9시께 강풍으로 송전철탑 2개가 무너져 전기가 끊어지면서 18만 거제 시민들은 극심한 불편을 겪고 있다. 주민들은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주유소 44곳 가운데 30곳이 문을 닫아 자동차 운행도 어려운 상태다. 상가와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으며 상수도 가압장과 정수장의 가동 중단으로 남부면 등의 수돗물 공급도 안되고 있다. 기본 생활 조차 영위하기 힘들어지면서 육지에 사는 자식들이 찾아와 나이든 부모를 모시고 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
김모씨는 "어쩌다 문을 연 상점도 양초, 손전등, 건전지 등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며 "밤이면 천지가 암흑으로 변해 폐허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등 대형 조선업체와 10여개 협력업체들이 15일 휴무키로 하는 등 산업계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거제시 관계자는 "정전 사태가 오래가면 겉잡을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강원 삼척시 가곡면 산간 지역에서는 정전으로 보일러 가동이 안돼 노인, 어린이 등 감기 환자가 늘고 있다. 탕곡리 이장 홍주표(40)씨는 "이재민들이 마을회관에 대피해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며 "2, 3일 내로 식량 등 생필품이 떨어지면 지난해처럼 산을 넘어 양초를 구하러 가야 할 판"이라고 걱정했다.
영양, 울진, 봉화 등 경북 산간지역 2,000여 가구 주민들도 전봇대 복구가 완료되지 않아 사흘째 암흑천지의 밤을 보냈다.
식수난 경남 마산시의 두산, 동산, 대동아파트 등 고층아파트 주민 3,000여 세대는 전기, 전화는 물론 수돗물까지 끊어져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 가운데서 주민들을 특히 괴롭히는 것은 식수 부족. 주민들은 인근 가게에서 식수를 구입하거나 단지 내 지하 탱크에서 물을 받아 높게는 18층까지 일일이 걸어서 옮기고 있다. 주민들은 물을 아껴가며 겨우 밥을 짓거나 식수로 사용할 뿐 세수나 양치질은 못하고 있다.
아파트 14층에 살고 있는 김모(37·여)씨는 "1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사흘째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당국은 식수 조차 공급하지 않고 있다"며 "전기까지 들어오지 않아 며칠째 원시인 같이 살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기본적인 생활 조차 어려움을 겪으면서 갓난 아기가 있는 주민들은 고향으로 피신하고 일부 주민은 시가 마련한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집이 단순한 잠자리 공간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삼척시 가곡면에서는 간이상수도 15개소가 모두 망가졌다. 주민들은 계곡물을 가라앉혀 사용하고 있지만 흙탕물로 변해 이마저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인력·장비난 배 주산지인 전남 나주 농민들은 태풍에 떨어진 낙과 피해 복구에 온 가족이 매달리고 있으나 일손 부족으로 속이 새까맣게 타고 있다. 3,000여평을 재배하고 있는 나주시 봉황면 권종근(44)씨는 "수확기 배가 거의 다 떨어져 올 농사를 망쳤다"며 "떨어진 배를 주워야 배가 썩어서 발생하는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는데 인력이 달려 엄두를 못 낸다"고 울상을 지었다.
전남 여수시 돌산읍 등 도서지역은 굴삭기 등 복구작업용 중장비 부족으로 애를 태우고 있다. 마을 진입로를 복구하고 있는 돌산읍 배동설(60)씨는 "대형 중장비가 부족해 어려움이 많다"며 "육지의 피해 복구 작업이 끝나야 도서 복구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삼척=곽영승기자 yskwak@hk.co.kr
나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마산=정창효기자 ch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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