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의 붕당정치를 한 마디로 평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붕당정치를 '당파싸움'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당연히 부정적인 평가다. 하지만 이것을 일제 식민사학의 시각이라 해서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래서 붕당을 정당정치의 기원으로 볼 수는 없겠느냐고 한다. 이래저래 붕당은 참으로 판단하기에 골치 아픈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하지만 붕당은 오늘날 우리 현실 정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붕당이 절정에 이른 것은 숙종 때다. 숙종 때 남인과 서인은 정권을 뺏고 빼앗기를 거듭했으니, 그 파란곡절은 이루다 말할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저 외딴 변방으로 귀양가서 불귀의 객이 된 자가 넘쳐났고, 형장의 이슬로 목숨을 날린 사람의 수도 적지 않았다. 숙종 때 와서 남인이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으로 한때 갈라서는가 하면,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영원히 분리되었다. 보통 사색당파라 하면, 남인 북인 노론 소론을 말하는데, 노론과 소론이 숙종 때 분화되었으니, 사색이 온전히 성립한 것도 바로 숙종 때인 것이다.
숙종이 즉위하자 남인은 서인을 배제하고 정권을 쥔다. 그런데 남인은 권력을 잡자마자 탁남과 청남으로 분리된다. 왜 탁남, 청남인가. 권력을 쥔 쪽을 흐린 물(濁)로, 학문을 한 재야출신을 맑은 물(淸)로 불렀던 것이다. 남인의 최정상부를 이루었던 인물 중 허적이나 권대운은 정권의 고위직을 차지한 기득권 세력이고, 허목 윤휴는 권력보다는 학문으로 발신한 재야출신이었다. 전자가 탁남, 후자가 청남이 된 것은 출신성분이 상이한 데 근거한 것이다. 서인 쪽을 보자.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쫓겨나고 서인이 정권을 잡자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되었다. 그 분리 과정은 너무나 복잡다단하여 간단히 말할 수가 없다. 대체로 노성(老成)한 보수세력이 노론, 젊고 개혁적인 축들이 소론이 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내부 진통 중이다. 민주당은 신당을 만들자는 세력과 민주당을 수호하겠다는 세력으로 갈라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젊은 축들은 노인당의 이미지를 쇄신하겠다면서 과거 5,6공에 참여했던 나이든 정치인들더러 물러나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옛날 숙종 시절의 당쟁을 보는 듯하다. 정치권의 복잡무비한 투쟁과 분화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단 하나의 기준이 있다면, 이 투쟁과 분화가 대다수 국민의 복리에 과연 기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독자들께서는 냉정하게 판단해 보시기 바란다.
강 명 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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