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도는 믿는다. 하느님 외에는 어떠한 신도 없다고. 오죽하면 기독교가 믿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도 부정할까. 하느님은 유일신이기 때문에 신인 아들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힘의 원천이 유일신인 하느님이기 때문일까? 정통 무슬림의 정신세계는 비장할 정도로 무겁고 강해서 신의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유일신 하느님 외에는 두려운 존재도, 경외해야 하는 존재도 없기 때문에 이슬람교도들은 막강한 미국을 우러러보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미국이 보여주는 핑크빛 청사진도 믿지 않는다.바그다드 북부 쓰루아의 한 마을이었다. 28세의 청년 사바는 미군에 정보를 제공해 미국의 공격을 도왔다. 그 결과 이라크인 4명이 세상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은 분노해서 청년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죄를 지은 아들을 직접 처형하라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총을 겨눴다. "사바, 도망치려 하지 말아라"는 말을 남기며. 티그리스 강변이었다. 그 외신을 접했을 때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의 심장을 겨눌 수 있었을까 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죽음보다 깊은 도를 품고 있는 이라크인들의 정신세계 때문이었다.
사바, 도망치려 하지 말아라. 외신은 그 말을 아버지의 '경고'라고 전했지만 내게는 그 말이 경고로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문책성 경고라기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떳떳하게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마지막 사랑이 아니었을까?
공동체의 정당한 분노에 아들의 심장을 제물로 바친다! 미국은 힘이 세서 쉽게 이라크를 침략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쉽게 이라크인들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적일 수 없는 사람들, 중심이 있는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일은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공식적인 전쟁은 끝났어도 이라크의 저항은 끝나지 않고, 줄기차고 거센 모양이다. 드디어 미국이 이라크에 한국 전투병을 보내달라고 요청해왔다. 이번에 노무현 정부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꽃 같은 우리의 젊은이들을 부당한 침략전쟁의 방패막이로 내줄까, 아닐까. 이번 결정은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더구나 이라크 전쟁은 유엔(UN)의 승인도 받지 못한 침략전쟁이었다. 국제사회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미국의 '애국주의'를 부추기며 진군했건만 전쟁의 명분으로 그렇게 호언장담하던 대량살상무기도 발견되지 않았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오만을 세계 방방곡곡에 알리며 승리의 나팔을 분 전쟁이었는데 정작 이라크인들의 정신까지 지배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미국이 자신만만하게 전쟁의 끝을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저항이 일어났다. 전쟁 중에 죽은 미군보다 전쟁이 끝났다는 부시의 선언 이후에 죽은 미군이 더 많았다. 힘으로 이라크를 지배하고, 자신이 곧 세계라며 세계의 여론을 무시하던 미국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미국 젊은이들의 피를 대신할 피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왜 사건은 미국이 만들고, 이유 있게 저항하는 이라크인들을 향해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유 없이 총을 겨누고 피를 흘려야 하는가. 결자해지(結者解之)인데. 만일 이라크인들의 저항에 피를 흘려야 하는 이들이 있다면 미국인들이 아닐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터로 나가야 하는 이들이 있다면 당연히 ' 애국주의'에 열광했던 미국인들의 자식들이다.
이유 없이 고난을 당하는 땅에 치유의 손길이 아니라 고난을 더하는 군대를 보내는 건 분명히 용병이다. 더구나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침략전쟁'으로 인해 오랜 기간 엄청난 고난을 겪은 민족이다. 그런 우리가 침략을 옹호하는 군대를 파병한다면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슬픈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이 주 향 수원대 인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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