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1일 미국은 또 다시 울었다.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의 옛 세계무역센터(WTC) '그라운드 제로'에서, 펜타곤에서,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에서 미국인들은 눈물을 훔쳤다."아빠 사랑해요. 너무 보고 싶어요." 그라운드 제로의 추모식장에서 13살 소녀 제시카 페이스 프랭크가 아버지 게리 제이 프랭크의 이름을 부를 때, 200명의 유족들이 그렇게 2,792명의 부모와 형제자매 친척의 이름을 차례로 읽어갈 때, 미국인들은 그들의 '영웅'들을 기억했다.
2년의 세월은 유족들의 아픔과 미국인들의 분노를 씻기엔 턱없이 모자란 것 같다. 그러나 올해의 9·11 추모에는 또 다른 변화가 보인다. 추모식장의 통곡이 흐느낌으로 절제되고, 성조기를 내건 집이 전 해보다 줄어든 것은 외형적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애국과 응징이 강조됐던 지난 해와는 달리 올해는 기억과 반성이라는 단어가 추모식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애국주의의 물결 속에서 안보지상주의에 대해 어떤 반론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도 많이 누그러졌다. 9·11 직후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제정된'애국 법안'의 인권침해 논란은 TV 프로그램의 단골 주제가 된 지 오래다. 편협한 애국주의가 미국의 단결을 가져오기보다는 반목을 불러오고, 세계와의 단절을 초래했다는 자성도 들린다. 무엇보다 WTC의 잿더미에서 이라크 공격의 구실을 찾으려 한 조지 W 부시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욕의 하늘을 뒤덮었던 분진이 가라 앉고, 그라운드 제로가 새 건물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지금, 미국인들은 9·11의 진정한 의미는 반목과 갈등이 아니라 포용과 화합에 있음을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는 느낌이다.
김승일 워싱턴 특파원 ksi810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