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불태운 성조기와 인공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불태운 성조기와 인공기

입력
2003.09.10 00:00
0 0

근래 반전반미 집회에서 성조기나 부시 대통령의 인형이 불타고 있고, 반북반핵 집회에서는 인공기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찢겨지고 있다. 미국이든 북한이든, 부시 대통령이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건 정치적 비판의 대상이 되며, 성조기이건 인공기이건 국기를 불태우는 것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실천한 행위로 보호되어야 한다.과거 미국 연방대법원은 정부정책에 항의하며 성조기를 불태운 시민이 주(州)법으로 처벌된 사건에 대하여, 국기소각은 헌법상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의 일환이라고 판시(判示)한 바 있다. 이것이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총련의 성조기 소각 그 자체는 표현의 자유라고 말한 이유이다. 우리 형법도 외국의 국기 중 '공용'(公用)을 위해 사용되는 것을 불태우는 행위만을 처벌하고 있으므로,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외국 국기 소각행위는 처벌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두 개의 국기소각에 대해서는 이러한 법해석의 차원을 넘는 고민이 필요하다. 먼저 불타는 성조기는 시민의 정치의식이 과거와 같이 일방적 대미종속을 용인하지 않고 있으며, 무조건적 숭미(崇美)주의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반미'가 바로 '친북'이 되고 '이적'(利敵)이 되는 시대는 종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학생운동이 상당한 기여를 한 점은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총련의 노선에 대해서는 그 내부에서 진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한총련 내부의 다양한 노선과 경향을 무시하고 한총련 자체를 '이적단체'로 금압하는 공안당국과 대법원의 태도도 문제이지만, 한총련의 남북한 정부에 대한 평가, 정세인식 그리고 투쟁방식에는 분명한 문제점이 존재한다. 북한 정권에 대한 '온정주의'적 평가와 남한의 자본주의 발전과 민주화에 대한 과소평가, '선도투'(先導鬪)에 대한 집착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학생운동이 사회진보의 견인차를 자부하려면 내부에 존재하는 교조주의적 편향과 지금 당장 결별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인공기를 불태우며 "타도 북한", "타도 친북정권"을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이 진정 '보수'란 이름을 사용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품기에 충분했다. 북한 인권의 현실이 심각하며, 그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함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위하여 유니버시아드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열망하는 대구 시민들의 염원도 무시하고 판을 깨는 듯한 이벤트를 가졌어야 했을까? 그리고 과거 독재정권 시기에는 어떠한 정부비판도 하지 않다가, 민주적 선거를 통하여 집권한 정부에 대하여 "반역독재정권"이라고 부르며 타도를 외치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것일까? 또한 안보를 위해 미국의 역할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여 다른 날도 아닌 광복절기념 집회에 성조기를 휘둘러야 했을까?

한반도의 전쟁위기 속에서 미국 강경파의 편에 서서 "전쟁불사"를 외치고, 북한과의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며,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정부의 전복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외침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히는 희망을 찾을 수는 없다. 피 냄새를 풍기는 증오와 파괴의 선동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불타는 성조기와 인공기는 '한미갈등', '남북갈등' 등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재이다. 이러한 모순은 화해의 주문을 외운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각 모순들은 일정 수준에서 제도적 틀 안에 수렴되어 해소되어야 한다. 한미행정협정의 개정 등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개선, 핵위기의 해소와 남북간의 평화체제 구축 등이 그 요체이다. 성조기나 인공기의 소각은 정치적 기본권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일회성 분노의 표출이거나 상징적 저항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이제 한미간, 남북간을 각각 새로이 규율하는 제도적 틀을 구축하기 위한 일에 고민을 집중할 때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새로운 평화보장체제가 만들어질 때 더 이상 성조기나 인공기는 불타지 않을 것이다.

조 국 서울대 법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