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달력의 붉은 날짜는 사흘이지만, 주5일 근무 업체가 아니더라도 돌아오는 토요일의 징검다리를 휴무일로 삼기로 한 데가 적지 않아, 이번 추석에는 닷새를 쉬는 사람들이 많을 터이다. 정기 휴가를 제외하면 한 해 가운데 최장의 연휴인 셈이다.예전만큼이야 아닐지라도 추석이 한국 사회에서 지닌 큰 의미는 귀성에 있을 터이다. 언론에서 '민족 대이동'이라고 호들갑을 떨 만큼 추석 때의 귀성객들은 그야말로 '인파(人波)'를 이룬다. '귀성'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와 조상을) 살핌'이다. 귀성객이 많다는 것은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것은 또 한국 사회가 어느 때부터인가 더 이상 농경 사회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농경민의 삶은 대체로 붙박이의 삶일 터이므로, 농경 사회에서라면 추석이 됐다고 해서 굳이 고향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귀성은 사회과학자들이 농촌 해체니 농민 분해니 하는 용어들로 가리키는 사회 변동 현상들을 필수적으로 포함했던 '근대화'의 산물이다. 그 근대화는 한국인 다수가 '도시 유목민'이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악덕 사주'와의 힘겨운 실랑이 끝에 체불 임금 일부를 받아내 야간 귀성 열차에 곤한 몸을 실은 구로 공단 여성 노동자의 순정한 웃음은, 그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들에게 귀성의 표준적 이미지로 자리잡으며 가슴을 뭉클하게 하곤 했다.
그러나 귀성을 의미 있게 만든 유목민화는 궁극적으로 다시 귀성의 의미를 박탈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마지막 귀성 세대로 만들 것이다. 귀성은 농경민이 유목민으로 변하고 있는 동안에만 의미가 있는 현상이다. 유목민화가 완성됐을 때, 귀성은 다시 의미를 잃는다. 유목민은 고향이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고종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