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규제 강화로 서울 강남 아파트 시장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며칠새 수천만원에서 1억원까지 호가가 떨어지고, 급매물도 나오고 있다.일단 반가운 소식이지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지금은 국지전(강남)중에서도 국지전(재건축 아파트)'이라고 누누이 강조해왔던 정부가 왜 이제서야 이런 대책을 내놓았느냐는 것이다.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는 9일 국무회의에 앞서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어 쉽게 꺼내기 힘든 카드였다"는 식으로 설명했지만, 그렇다면 2∼3달 전에는 재산권 침해가 되고, 지금은 안 된단 말인가.
오히려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대통령 의지는 강력한데 관료출신 경제장관들이 "너무 세게 밀어붙이면 일본식 자산디플레가 올 수 있다"고 해서 수위가 조절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튀어 오르면 때려잡고, 잠잠하면 손 놓고, 다시 튀어 오르면 때려잡는 뒷북치기식으로 매달 투기과열지구가 늘어나고 세무조사가 반복됐던가. 언론들이 디플레 가능성을 경고할 때마다 걱정되는 건 인플레라고 한 게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허탈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물론 경제 장관들의 진의가 경제가 어려운데 건설경기까지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을 것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가격이 더 오르는 악순환은 바로 그 같은 당국 의지의 한계를 시장이 너무도 잘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는 시간과의 싸움이지만 집값은 생존의 문제이자, '어떤 일이 있어도 집값만은 안정시키겠다'는 참여정부의 집권약속이었다. 이번 대책이 '그래도 부동산 가격은 오른다'는 국민적 심리를 또 한번 확신으로 만든다면, 경제장관들은 어떻게 그 책임을 질 것인가.
유병률 경제부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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