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를 하나 내겠다. 다음 말을 한 한국 사람은 누구인가? "정권이 나서서 반역과 독재에 대한 국민의 합법적 대응의 길을 막으면 국민은 헌법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서 그런 정권을 반역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 속에는 물론 군인도 포함된다. 이런 저항권은 4·19처럼 물리력을 동원하더라도 합헌적이다."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이 민주화운동 출신의 두 전직대통령, 즉 양김이나 백기완씨 같은 재야운동가, 민주화운동단체들이 박정희와 전두환 같은 독재정권에 저항하면서 한 말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놀랍게도 문제의 발언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극우논객이라고 할 수 있는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가 최근 노무현 정부를 '친북비호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저항을 촉구하면서 쓴 글이다.
조씨의 글을 읽는 순간 가진 느낌은 양면적이다. 우선 조씨 같은 극우논객조차도 민주주의의 핵심 중 하나인 국민의 저항권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박정희와 같은 군사독재를 옹호하며 이에 대항해 많은 민주투사들이 고문과 탄압 속에서 목숨을 걸고 행사한 정당한 저항권을 비웃어 왔던 조씨가 갑자기 민주투사로 변신해 민주적 선거에 의해 선출된 합법적인 민주정권에 대해 사실상 무장저항을 선동하고 있으니, 한 마디로 코미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쨌든 문제의 발언과 관련, 친 노대통령 계열의 시민단체 '국민의 힘'이 최근 조씨를 형법상의 내란선동죄와 국가보안법상의 국가변란 선동죄로 경찰에 고발했다. 개인적으로 국민의 힘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조씨를 고발한 것은 잘못이다.
물론 참여정부는 친북좌익 정권이라는 주장에서부터, 따라서 이에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조씨의 말 중에 어느 하나 맞는 것이 없다. 또 월간조선의 최장집 사건이 보여주듯이 평소 색깔론을 통해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데 앞장서 온 조씨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사실 개인적으로 최장집 사건 당시 최 교수를 옹호하는데 앞장섰다가 월간조선에 의해 국가의 기본, 즉 '국기를 흔드는 좌파 지식인'으로 비판받은 악연도 있다) 그 뿐 아니라 조씨처럼 민주정부의 전복을 선동하는 표현의 자유까지도 인정해줄 경우 그것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조씨의 주장을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더 큰 위협이 된다. 조씨의 주장을 처벌할 경우 동일한 논리로 극우세력들이 국민의 힘 등 자신들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세력의 주장을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인권단체는 한 도시가 극우단체인 KKK의 집회를 인종주의를 선동하는 반민주적 집회라는 이유로 불허하자 KKK를 옹호하는 소송을 해서 승소했다.
특히 국민의 힘이 국가보안법을 걸어 조씨를 고발한 것은 너무나 잘못한 것이다. 물론 평소 대표적인 반민주악법인 국가보안법의 폐지 주장을 반역행위라고 비판해온 골수 국가보안법 옹호론자인 조씨를 국가보안법으로 고발한 것이 이 법을 희화화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조씨를 국가보안법으로 고발한 것은 국가보안법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배치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틀린 주장도 할 수 있는 자유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싸우면서 적을 닮아가는 것이다. 군사독재와 극우세력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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