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新유학시대]<14>"일하며 정통영어 배우자" 英어학연수 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新유학시대]<14>"일하며 정통영어 배우자" 英어학연수 붐

입력
2003.09.09 00:00
0 0

어학연수생들 사이에 '런던에서는 영국인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과연 시내 한복판인 토튼햄 코트 로드에는 중년층을 제외하면 본토박이 영국인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English School' 간판을 단 어학원이 빼곡하고, 동유럽 동남아 중남미 등에서 영어를 배우러 온 젊은이들이 이곳을 가득 메우고 있다.9·11테러 이후 미국 비자발급이 어려워지면서 영국은 어학연수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비록 7월 대형 어학원 '에번다인'이 도산하면서 수백 명의 한국 학생들이 수강료를 떼이기도 했지만 정통 영어를 배울 수 있고, 6개월이상 학교에 등록한 학생이라면 취업비자 없이도 아르바이트가 가능하다는 등의 장점이 있어 영국 어학연수의 붐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영국도 보안강화 차원에서 올 가을부터 입국전 비자심사를 의무화했지만 아무래도 미국 비자보다는 받기가 까다롭지 않다.

이른바 '퀸스 잉글리시'(Queen's English)라는 영국영어에 대한 본토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미국에서 하와이스쿨을 마치고 세인트 마틴 칼리지 디자인학과에 재학중인 방승희(23)씨는 방학을 맞아 미국 귀환을 앞두고 영국인 동료로부터 "미국 억양을 배워오지 말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들었다. 방씨는 "미국에서 영국 억양을 구사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아하다'며 부러워한다"고 말한다. 런던 칼리지에서 패션을 전공하는 최정운(24)씨는 "전원도시에서는 물을 '워러'라고 미국식으로 발음하면 애써 못들은 척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런던에 온 한국 어학연수생의 숫자는 대략 1만5,000∼2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사설학원연합회 ARELS에서는 전체 어학연수생 중 9%가 한국인이라는 수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학연수생들이 체감하는 한국인의 '밀도'는 훨씬 높다. 2월초 영국으로 와서 런던 릴리언 비숍 어학원에 다니고 있는 이다은(21)씨는 "오전반의 경우 한국인이 3분의 1이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연수생들은 일부러 중산층 영국인이 많고 한국인이 적은 지방 소도시를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상영 영국교육원장은 "어학원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 한국인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말한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말을 배우기 위해 서로를 멀리하다가도 고달픈 이국생활이 길어지면 결국 끼리끼리 뭉치게 된다. 이 원장은 "영어를 현지인처럼 구사하는 수준을 10으로 봤을 때 적어도 6정도는 돼야 현지학습으로 실력을 늘릴 수 있다"고 말한다.

부실한 어학원에서 형식적, 비효율적으로 진행하는 수업이 과연 영어실력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미지수다. 이 원장은 한국인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하는 초급단계(레벨 1, 2)의 경우 우리의 초등학교 영어교과서 수업을 단지 영어로 반복하는 수준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학연수생이 늘어나다 보니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어학원이 손쉬운 돈벌이 수단으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최근 영국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싼 값의 수업료를 받고 비자갱신까지 해 주는 이른바 '비자 공장'(visa factory)이 전체 어학원의 10∼20%인 700여개에 달했다. 에번다인 사건 후, 영국 강사노조인 NATFHE는 정부에게 어학원 인가 조건의 강화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 원장은 "어학원을 선택할 때 영국문화원 등을 통해 브리티시 카운슬(British Council)의 인가를 받았는지 확인하고 학비가 지나치게 싼 곳(정상정인 학비는 대략 연간 800여만원)을 피하라"고 말한다.

/런던=글·사진 양은경기자 key@hk.co.kr

■ 옥스퍼드大 튜토리얼시스템

수십 여개의 칼리지가 모인 옥스퍼드대에 들어서면 시간이 정지된 느낌을 받는다. 푸른 이끼가 융단처럼 피어 있는 수백년 된 건물에 아직도 지하에서 수도사처럼 촛불을 켜고 연구하는 교수들이 있다. 장엄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식당은 마치 성당 같다. 하지만 역대 수상 중 이곳 출신이 아닌 사람을 찾기가 힘들 만큼 옥스퍼드의 명성은 현재형이다.

1786년 세워진 해리스 맨체스터 칼리지에서 교육심리학을 강의하는 정미령(59) 교수는 유일한 한국인 교수다. 1985년 에든버러대에서 '환경에 따라 IQ가 달라진다'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대학의 행정적 의사결정에도 참여하는 교수의원의 위치로 올라섰다. 현재 옥스퍼드에는 80여명의 한국인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있다. 해리스 맨체스터 칼리지 랄프 월러 학장은 "한국인들은 옥스퍼드의 자랑거리인 튜토리얼(tutorial) 시스템에서 특유의 근성과 부지런함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한다.

튜토리얼의 목표는 자기 분야에서 생산적 기여를 할 수 있는 독자적 사고력(independent thinking)을 키우는 데 있다. 정 교수는 이를 "학문적 리더십 확립"이라고 표현한다. 미국 컬럼비아대를 마치고 머튼 칼리지 생화학과 대학원에 재학중인 재미동포 이승재(33·미국명 스티븐 리)씨는 "나름의 논리를 세우게 된다. 공식만 나열하는 미국식 공부법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졸업 후에는 '옥스브리지' 클럽에 가입, 영국 사회를 주도하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탄탄한 인맥으로 편입된다. 그렇지만 이들은 돈, 명예, 권력 중 어느 하나만 택하기 때문에 결코 불공평한 엘리트주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대학 학생 이선민씨는 "교수들은 정말 사심없이 학문에 몰두한다. 허름한 옷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알고보면 세계적인 석학들"이라고 말한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이른바 '파워엘리트'가 사회적 가치를 독점하는 구조에서는 명문대 입시에 매달리는 학부모들을 절대 탓할 수 없다"며 "교육개혁의 요체는 결국 사회개혁"이라고 말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