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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북녀 응원단이 남긴 감상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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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북녀 응원단이 남긴 감상 II

입력
2003.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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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월 전, 같은 제목의 글을 썼다. 부산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였다. 그 때도 남북문제에 관한 정치사정은 복잡했지만, 좀더 희망에 젖어 있었다. <북한팀 경기장마다 응원 인파가 끊이지 않았던 흐뭇한 대회였다. 우려되던 인공기 갈등도 없이 '원 코리아' 한반도기가 휘날렸고, 남북한의 정서적 동질감이 부풀었다. 통일은 가까이 오고 있으며,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라는 예감을 일깨운 16일간이었다.…> 대구 유니버시아드가 폐막된 지금, 마음이 그 때보다 무겁다. 남북한 선수가 한반도기 아래 동시 입장해 흐믓했고, 북한 미녀 응원단의 발랄한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러나 대회는 시작 전부터 정치적 기류에 오염돼 있었다. 8월 초 한총련 학생들이 성조기를 불 태우고, 광복절에는 우익 단체가 인공기를 태웠다. 불안한 분위기 속에 대회는 치러졌다.

북녀 응원단은 '장군님 사진이 비에 젖다니…' 하는 정치적 제스처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도 만들었으나, 생기 있고 경쾌한 응원으로 화제를 뿌렸다. '통일공세'라고나 할까. 선수든 응원단이든 수 없이 '민족통일', '우리는 하나' 라는 말을 쏟아 놓았다. 사회주의 체제가 차례로 붕괴하는 것을 목격한 지금, 북한 젊은이들에게 통일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이 꿈꾸는 통일은 일부 보수세력의 왜곡된 주장대로 '적화통일'은 아녔을 것이다.

남쪽 사람들은 통일에 대해 대체로 냉담했다. 거북한 주제인 듯, 말을 아끼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북측이 교육받은 입장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라면, 남측은 변화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까닭일 것이다. 그 침묵은 남한에서 내부 갈등이 일고 또 보수언론이 이를 부추김으로써, 6·15 공동선언을 포함한 햇볕정책이 퇴조한 탓이기도 하다.

진보와 보수의 잦아지는 충돌 속에, 남북관계도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자기분열을 보이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금강산 육로 관광, 이산가족 만남, 남북철도 연결 등 상상하기 어려운 큰 일들이 성사되었다. 오는 15일에는 마침내 평양과 묘향산, 백두산까지 북녘 내부에 이르는 더 깊은 길이 열린다. 반면 지난 정부 햇볕정책의 주요 추진세력이 특검법으로 구속되었고, 정몽헌 현대 아산이사회 회장의 자살 비극까지 있었다.

보수적 분위기가 자아내는 중압감이 통일논의와 남북협력 문제까지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기적이고 편협한 보수주의자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무엇이 시대적 요구이고 사명이며, 또한 가치 있는 행위인가에 대한 분별력을 잃어가고 있다. 소떼를 몰고 남북협력의 큰 길을 열었고, 실천도정에 희생당한 정주영-정몽헌 부자에 대한 평가와 애도에마저 인색해지고 있으니 민망할 뿐이다. 북한 관광에 오르는 이들이여! 온몸으로 길을 연 정 회장 부자에게 사의를 표해야 마땅할 것이다.

한반도문제 해결 없이 '동북아 중심국가'를 얘기하거나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허투루 말하지 말라. 외양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것은 허상을 좇는 것이며 한낱 기만에 불과하다. 독일이 1990년 통일된 후 3년이 지나서야, 유럽연합(EU)이 출범한 사실은 명쾌한 설명이 될 것이다. 역사에는 단축 코스가 없다. 인내심을 갖고 걸음을 부지런히 옮기는 것뿐이다. 한반도가 불안한 한, 동북아 발전도 정체될 뿐이다.

유니버시아드는 우리에게 1년 전보다 한층 적막해지고 쓸쓸해진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떠올려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 라는 외침만은 귓전에 남아 있다. '햇볕정책' 용어가 적절치 않아도, 그 정신마저 퇴색할 수는 없다. 통일은 어느 진취적 정치가나 정당의 몫이 아니다. 통일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 진지한 목소리가 아쉽다. 진보든 보수든 그것은 나지막하고, 거칠지 않고, 분별심 있는 목소리여야 한다.

박 래 부 논설위원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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