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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이민 열풍…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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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이민 열풍…왜?

입력
2003.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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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이민 열풍에 휩싸였다. 한 TV홈쇼핑 업체의 캐나다 이민상품에는 모두 4,000여명이 몰려 신청비용으로만 700억원을 썼다. 신청자 중 80%가 30·40대였고, 이들이 이름조차 생소한 인구 115만명의 마니토바주 이민을 원했다는 소식은 우리 사회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주말 열린 이민·이주박람회에는 지난 봄의 2배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 도대체 이들은 왜 한국을 떠나려 하는 것일까."한국에는 희망이 없다"

대부분 이민 희망자는 "한국 사회에 지쳤다"고 말한다. 돈이든, 회사 문제든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새로운 목표를 찾을 힘조차 없다고 한다.

지방S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호주 기술이민을 준비중인 김모(31)씨. 대학 졸업 전부터 이동통신사 대리점을 운영하며 외제승용차를 몰 정도로 잘 나갔던 김씨는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사업에 실패하고 취직한 벤처기업도 망하자 한국에서의 삶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김씨는 "나이 제한 때문에 재취업은 힘들고, 설령 취업을 한다 해도 비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500만원을 들여 이민을 신청했고, 지금은 서류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통신업체를 운영하다 최근 정리한 이모(36)씨는 괌 이민이 목표다. 재산이라곤 시가 2억원짜리 집이 전부인 이씨는 "6살 된 아들에게 희망 가득한 삶을 남겨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상가 분양권을 사면 주재원 신분으로 괌 이민이 가능하다고 소개하는 업체와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자녀교육과 가장의 여유로운 삶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피아노, 영어 등 학원 5개를 보내는데만 매달 80만원이 들었다. 애도 안쓰럽고 우리도 힘들었다. 교육면에서 캐나다가 좋다고 하니 가보려 한다. 나 역시 대기업 생활 11년간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다 보니 '이게 사는 건가'라는 회의가 들었다." A대기업 과장 박모(35)씨는 결국 최근 TV홈쇼핑이 판매한 캐나다 이민상품을 신청했다.

경영컨설턴트로 일하는 박모(55)씨는 이미 7년간 상사 주재원으로 일했던 미국을 택했다. 대학 1학년, 초등학교 6학년인 두 딸이 부인과 함께 미국에 있는 '기러기 아빠' 박씨는 "아이들이 국제적 경쟁력을 키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한국은 너무 폐쇄적이고 가능성이 없지 않은가. 미국에서는 주변 눈치 볼 일이 없으니 '스시 요리사'라도 해서 먹고 살고, 남는 시간은 여유롭게 즐기며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20세 이상 성인 1,579명중 '교육이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41.5%가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4월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서도 20·30대의 50%가 "가능하면 이민을 가겠다"고 답했다. 국제이주공사 홍순도 대표는 "의사 회계사 공무원 등 30·40대 전문직 종사자가 이민에 관심이 많은 것은 자녀 교육열이 높고, 한국으로 돌아와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영어권 국가이면서 교육여건이 좋고, 사회가 안정돼 있으면서 각박하지 않은 나라가 주 타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지중해와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몰타와 피지에 이민희망자들이 몰리고 있다.

꿈과 현실은 별개

캐나다 이민 생활 4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정모(48)씨. 그는 현지에서 대학을 졸업한 딸과 아들이 영어를 익혔다는 점에 만족한다. "한국에서 사업에 실패한 뒤 남은 재산을 챙겨 무작정 캐나다로 갔다. 현지 생활은 생각보다 냉혹했다. 몇 억 안되는 돈은 정착하는 데도 부족했다. 아이들은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했고, 우리 부부는 한인식당과 식품점 일을 도왔다. 그 정도 노력을 할 거라면 차라리 한국에서 새 삶에 도전키로 했다."

정씨는 그래도 행복한 경우다. 대부분 "나도 한 번"이라며 이민을 생각하지만 문턱부터 주저앉고 만다. 최근 미국은 이민은 물론 방문 자체도 제한하고 있고,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도 이민법을 강화, 취업이민이나 기술이민이 힘들게 됐다. '몸으로 때우는' 이민 대신 '돈으로 때우는' 이민만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민 전문업체의 한 관계자는 "요즘은 돈이 없으면 이민도 가기 힘들다"며 "나도 이민을 꿈꾸지만, 그곳에서 여유롭게 살려면 앞으로 20년은 직장생활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고려대 사회학과 윤인진교수

30∼40대 젊은 층과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이민 열풍에 대해 고려대 사회학과 윤인진(42·사진) 교수는 "고질적인 교육 문제와 우리 사회의 기형적 조직 문화가 이민 결심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이민과 재외동포 문제를 집중 연구해온 윤 교수는 2년 전 고려대에 '한민족공동체 연구실'을 설립, 운영중이다.

윤 교수는 "'생의 주기'가 지나치게 단축된 우리 사회에서 40세만 되어도 조직에서 위로 오르는 것은 고사하고, 지금 있는 자리를 지키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라며 "지금은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 인력을 우리 스스로 밖으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여기에 사교육비, 열악한 교육환경, 낮은 교육의 질 등 자녀 교육문제까지 더해져 이민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전문직 종사자의 증가 이유에 대해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에 대한 높은 기대를 갖고 있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현실에서 그 기대를 충족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이유로 이민을 떠나는 전문직 종사자의 경우, 외국에서는 더욱 더 그 기대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단순한 교육 목적의 이민에는 반대한다"는 윤 교수는 "한창 의욕적으로 일할 나이에 자녀 교육 때문에 가족 전체가 희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가장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면 결국 실패한 이민이 되고 만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적인 이민을 위해서는 "이민 결정 전에 다만 몇 개월이라도 먼저 현지에 가서 직접 경험해 보고, 주위의 의견도 들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신재연기자

■이민 100년 변천사 "생계형"서 "교육·전문직 이민"으로

올해로 100년이 된 한국인의 이민은 시대가 바뀌면서 변천을 거듭해왔다. 초반부에는 가난을 벗어나려는 생계형 이민이 많았지만 이제는 부유층이나 전문직 종사자 등을 중심으로 '보다 질 높은 삶'을 추구하는 이민, 교육 목적의 탈출형 이민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의 이민 역사는 1902년 12월 조선인 100여명이 제물포항을 떠나 2개월만인 1903년 1월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사탕수수 재배를 위한 농업이민을 떠난 이들은 당시 '대한제국'이 처음 추진한 공식 인력 송출에 따라 낯선 이국에 정착, 이민 1세대를 개척했다. 이 무렵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난 초기 이민자들도 고난을 겪은 끝에 멕시코에 정착했다.

일제 강점기 동안 뜸했던 대규모 이민은 45년 해방을 전후해 다시 미국으로 100여명이 건너가면서 재개됐으며 한국전쟁 직후에는 전쟁고아의 입양 러시가 이어졌다. 60년대에는 미국 정부가 이민 문호를 확대하면서 10년 사이에 3만5,000여명이 미국으로 떠났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농업이민, 독일 등 유럽으로 떠난 간호사와 광원의 이민 행렬 등 이민국가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서독으로 이민을 간 간호사와 광원은 1만여명에 달했다. 70년대 들어 국적기의 미국행 정기 항로가 개설되면서 이민도 폭증했고, 엄격한 외환규제 때문에 활발하지 못했던 투자이민도 82년 규제가 풀리면서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지로의 이민이 늘어났다.

80년대 가족 초청과 취업 이민에 힘입어 매년 3만명이 넘던 미국 이민은 87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98년 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에 편입되는 등 경제상황이 악화하면서 2000년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 때부터 생계형 이민보다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30∼40대 전문직의 이민이 많아졌고, 조기유학 붐을 타고 자녀와 부인을 이민 보낸 뒤 자신은 한국에서 홀로 지내는 '기러기아빠'가 확산되는 등 교육형 이민도 늘어났다. 특히 99년부터는 더욱 쾌적한 삶을 누리기 위해 배타적인 미국보다는 캐나다행을 선택하는 이민 행렬이 폭증했다.

/정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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