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2주년만 아니었어도, 투쟁단 모두 함께 갈 수 있었을 텐데…."10일부터 5일 동안 세계무역기구(WTO) 제5차 각료회담이 열리는 멕시코 칸쿤에서 반(反)세계화 시위에 참가하고, 한국 농업 보호를 위해 개발도상국 지위 유지를 촉구할 대규모 시위단이 멕시코로 출국했다. 민주노총, 민중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노동·농민단체 회원 188명으로 구성된 '한국 칸쿤 투쟁단'이 그들.
그러나 이들의 출국은 순탄치 않았다. 당초 계획은 이달 초 200명이 인천공항을 함께 출발,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멕시코로 들어가는 것. 그러나 9·11테러 2주년을 앞두고 미국 정부가 지난달 2일부터 60일 동안 한시적으로 비자가 없는 외국인의 경우 미국 공항을 이용해 연결 항공기에 탑승할 수 없다고 발표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투쟁단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노조에 비행기 표를 긴급히 부탁했으나 여의치 않자 건설교통부에 200명을 태우고 갈 전세기를 띄우기 위해 직항로 개설을 요청했다. 하지만 건교부의 반응은 냉담했고, 미국을 경유하지 않는 항공편은 이미 예약이 완료된 상황이었다. 투쟁단은 국적기, 외국기에 상관없이 항공편을 다양화하고, 경유지를 불문하고 멕시코로 갈 수 있는 모든 항공편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참가 인원도 고육지책으로 200명에서 188명으로 줄였다. 결국 투쟁단은 수차례로 나뉘어 지난 3∼6일 50여명, 7일 60명, 8, 9일 70여명이 멕시코로 향했다. 이용 항공편도 대한항공, 네덜란드항공, 멕시코항공 등 무려 5개에 달했다. 시간이 가장 절약되는 로스앤젤레스 경유 노선 대신 캐나다 밴쿠버, 네덜란드 등을 거쳐 가는 긴 여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투쟁단의 손낙구 대변인은 "투쟁단 대부분이 미국 비자를 갖고 있지 않아 빚어진 일"이라며 "항공기 일정을 바꿔가며 지난 한 달 동안 항공편을 구하기 위해 진땀을 빼는 등 멕시코 도착 전에 힘든 투쟁이 시작된 것 같다"고 허탈해 했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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