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9월9일 프랑스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가 지롱드현 말로메성(城)의 한 별장에서 작고했다. 37세였다. 친구였던 반 고흐처럼 툴루즈 로트레크의 생애도 불행했다. 14세 때와 15세 때 연이어 말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그는 불구가 되었고, 30대 이후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오래된 귀족 가문 출신으로서 파리의 명문 콩도르세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의 세속적 삶이 그리도 짧고 힘들 줄 몰랐을 것이다.그러나 예술적으로 보면 툴루즈 로트레크의 삶은 풍요로웠다. 그는 19세기 최고의 소묘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유화 작업에서도 인상파의 자장(磁場) 안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석판화도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툴루즈 로트레크가 자신의 화폭에 주로 담은 것은 파리 몽마르트르 풍경이었다. 그는 그 곳에 작업실을 차리고 13년 여를 살았다. 센 강 북쪽의 몽마르트르는 뮤직홀, 술집, 음악카페, 유곽이 몰려 있는 파리의 홍등가다. 센 강 남쪽의 몽파르나스에 부유한 사람들의 밝고 밋밋한 낭만이 흐른다면, 몽마르트르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이방인들의 어둡고 병적인 낭만이 흐른다. 툴루즈 로트레크는 둔한 몸을 이끌고 몽마르트르의 지저분한 골목과 언덕들을 누비며 그 곳의 부평초 인생들을 예술사에 편입시켰다.
툴루즈 로트레크가 짧은 삶을 마치자, 그의 어머니는 아들 작업실에 남아있던 작품들을 고향인 남프랑스 알비시(市)에 기증했고, 알비시는 이 작품들을 위해 툴루즈 로트레크 미술관을 세웠다. 알비는 12세기 중엽 이래 마니교적 이원론에 바탕을 둔 이단적 기독교 종파 알비파(派)가 크게 융성했던 곳이다. 13세기에 교황 인노켄티우스3세는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십자군을 조직한 바 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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