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3일 국회에서 김두관 행자부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키면서 그것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라고 주장했다. 건의안이 통과된 후 웃고 있는 한나라당 간부들을 보니 어이가 없다. 무슨 장한 일을 했다고 그렇게 득의만만 한가.한나라당은 두 차례 대선에서 패배했으나 1997년까지 40여년간 장기집권 했고, 그만큼 풍부한 정치 경험을 갖고 있다. 여당이 서투르고 불안해 보일수록 국민은 경험 많은 정당의 노련함과 세련된 안목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그런 기대를 외면하고 있다. 강력하게 군림하던 지도자가 떠난 한나라당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것이 정권을 잃는 원인이 됐다. 오랜 정치가문의 예절과 체통, 도의도 퇴색했다. 과거의 인재들은 무능하게 우왕좌왕하고 있다. 옛 영화가 무색할 지경이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무성 의원은 한술 더 떠서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 공식석상에서 나온 말이다. '개구리론' 야유도 한나라당에서 나왔다. 모욕주기로도 부족해 취임 6개월에 중간평가를 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에 어긋난다. 수 십년 모진 탄압을 받으며 악이 바친 야당이라면 몰라도 한나라당이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과거에 자기 당 출신 대통령을 황제 모시듯 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대통령 대접을 그런 식으로 하는가. 자기 당 대통령들은 모두 성군이어서 그렇게 깎듯이 모셨는지 묻고 싶다. 과거를 들출 것도 없이 앞으로 대통령을 배출하려는 정당이라면 대통령의 격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동업자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한다.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고, 시중에서 험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야당까지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야당은 함께 정치를 해 나가는 파트너다. 정치가 잘못되면 파트너로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대통령 흔들기도 적당히 해야 한다. 아직 서투른 정권을 흔들어 댄다면 내년 총선에서 유리해질지 몰라도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노무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이번에도 예외 없이 거친 대응을 보였다. 해임안이 가결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말이 청와대에서 나오는 바람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더 강경해졌다는데, 그런 말을 한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 언론이든 야당이든 비판이 거셀수록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것이 노 대통령식 대응인데 그것은 대응이 아니라 반발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김두관 장관의 처신에도 문제가 있다. 장관은 자신의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결정뿐 아니라 국회의 결정도 존중해야 한다. 그는 "일선 경찰이 책임져야 할 일을 가지고 장관 해임을 건의한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남용"이라고 주장하고 "사퇴하면 다수당 횡포에 굴복하는 것이고 사퇴하지 않으면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으로 비칠까 고민"이라고 말했는데, 불필요한 다변이다.
'국회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는 헌법 63조에 대한 해석은 각기 다르다. '정치적 구속력'은 있으나 '법적 구속력'은 없다는 해석도 있고, "3권 분립 정신에 따른 국회의 견제권이므로 당연히 구속력이 있다"는 해석도 있다.
나는 헌법 63조의 존재 자체가 법적 구속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시간을 끌지 말고 김 장관을 사퇴시켜야 한다. 법 절차를 밟아 통과된 국회결의를 다수당 횡포라는 이유로 거부하는 것은 또 하나의 횡포다.
정권 출범 다음해에 총선이 있다는 것은 장단점이 있지만 우리의 정치 풍토에서는 부작용이 더욱 두드러진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내놓는 서슬 푸른 개혁정책은 으레 총선을 우려해 후퇴하고, 총선이 가까울수록 치고 받는 정쟁이 격화하여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펼쳐나가야 할 국정이 마비되곤 한다.
야당이면서 제1당인 한나라당은 오랜 통치경험을 살려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을 개정하는 등 여당시절에 하지 못했던 개혁을 추진한다면 총선도 대선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약점을 공략하고 정쟁을 확대하여 표를 얻으려는 한나라당의 전략은 어리석다. 한나라당은 정도를 가야 성공할 수 있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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