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참여정부의 첫 세제 개편안이 나왔다.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도 함께 발표되었다.중장기 정책방향은 원래 원론적인 내용이 주를 이룰 수 밖에 없음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중장기 방향과 2003년 세제개편안 사이에 맥을 잇는 연결고리를 찾아 보기 힘든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중장기 청사진은 향후 우리 세제의 단계적 진화를 끌어가는 로드맵이라는 점에서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전략이 2003 세제개편안에 녹아있어야 했다. 경기침체로 인해 정책 환경이 불투명하다고 하지만 이 대목에 있어서 만큼은 미흡한 점이 너무 많아 이번 세제개편안에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우리나라처럼 매년 세제개편을 단행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세제개편은 정부의 살림살이를 충당하기 위한 세금을 걷는 틀을 바꾸고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무리 경제환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고 하더라도 납세자의 '순응비용'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일관된 신뢰 유지를 감안해, 지금 같이 매년 세제를 뜯어 고치는 일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이번 세제 개편안은 위헌소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상속·증여세 포괄주의를 도입하고 부동산 단기 양도차익에 대해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데 역점을 두었다. 부동산 보유과세의 비중 제고 및 과표현실화 방침도 밝혔다. 분배와 형평을 강조하는 참여정부의 국정철학을 토대로 변칙적인 부의 대물림이나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를 2003 세제개편안에 비중있게 반영하는 데는 미흡했다고 지적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또한 세제와 세정은 동전의 양면 또는 수레의 두 바퀴라는 점을 인식하여 현금영수증 카드제도를 도입해 과표양성화를 꾸준히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지만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시 된다.
아울러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세정'이라는 구호가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으나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조차 마련되지 않아 허울 뿐인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전세계적으로 조세조화를 위한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이동가능한 세원을 놓치지 않기 위한 조세경쟁도 긴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세원은 넓히고 세율은 낮춰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세율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 세법 개정 때 다음 세제개편시 소득세제를 전반적으로 조정하기로 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비판을 면키 어렵다. 금융소득종합과세의 기준인하나 자본소득양도차익과세 등도 미뤘다. 다만, 문화계의 반대로 13년간 다섯 차례나 미뤄졌던 미술품 양도차익과세가 이뤄지게 된 것은 소득세제의 포괄화 방향에 한발 다가선 것으로 평가 받을 만 하다.
정부는 또한 세금이 덜 걷힐 것을 걱정하면서도 세금 감면을 줄이는 일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올해 말로 끝나는 79개 감면제도 중 12개 제도만 폐지하기로 한 것이 그런 예다. 그나마 폐지 대상 중 중소기업 특별세액 감면제도나 농수협예금(2,000만원 이하) 비과세 등 굵직한 내용은 정치권이 반대하고 있어 실현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미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미국과 유사한 22.7%로, 일본의 17.2%에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국방비나 사회보장 및 복지비 등의 지출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열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정부의 살림 꾸리기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정부지출 가운데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대규모 국책사업을 중심으로 낭비를 줄이고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아직도 많다. 이런 점에서 세원을 늘리는 노력과 함께 세부담을 적정한 수준으로 조정하는 조세체계 전반에 걸친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 정 수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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