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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서 커피까지… "진공없인 못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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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서 커피까지… "진공없인 못살아"

입력
2003.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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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공의 세계아무 것도 없는, 완전히 빈 공간이라는 '진공(眞空·vacuum)'. 진공과 일상생활은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컴퓨터, 텔레비전, 휴대폰, 카메라 등의 전자제품이나 전기제품은 진공기술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또한 가공식품이나 의약품 제조에도 진공기술이 필요하다. 진공에서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길래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 쓰일까?

현실적으로는 입자가 하나도 없는 절대 진공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진공은 주위 대기보다 압력이 낮은 상태를 말한다. 대기 중에는 질소, 산소, 수증기, 탄산가스, 헬륨, 아르곤 등과 같은 여러 기체가 섞여 있는데 이들 기체 분자의 숫자는 1㎤당 2.5x(10의 19승)개 정도. 진공기술 관련 국제규격을 정하는 국제표준기구(ISO)와 미국진공협회(AVS)에 따르면 진공은 '대기압보다 압력이 낮은 상태 또는 1㎤당 분자 수가 2.5x(10의 19승)개보다 적은 상태'다. 일상 생활에서 발견하는 진공의 세계를 알아본다.

생활에서 발견되는 진공

진공도가 높아지면 즉 분자 밀도가 줄어들면 분자 밀도가 많은 쪽에서 적은 쪽으로 압력차에 의한 힘이 발생한다. 이 같은 힘을 이용한 간단한 사례가 진공청소기. 진공청소기 내부의 압력이 외부 압력보다 낮기 때문에 먼지가 내부로 빨려 들어간다. 주사기로 약물을 빨아올리는 것도 같은 원리다.

또한 압력이 낮은 공간에서는 기체 분자 수가 적기 때문에 기체를 매개로 전달되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된다. 같은 원리로 열 전도율도 떨어진다. 보온병은 이중 용기 사이를 진공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단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대기압의 40분의 1 정도 압력에서는 물이 실온에서도 끓는다. 이런 성질을 이용해 커피, 라면 스프 등과 같은 식품이나 페니실린과 같은 의약품을 냉동시킨 후 압력을 낮추면 쉽게 수분이 건조된다. 그러면 열에 의해 성분이 변하지 않고 맛과 향기, 효능 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진공 상태에서는 산소의 분자 밀도가 낮아 금속의 산화를 막을 수 있다. 이를 이용한 것이 백열전구의 필라멘트. 전구 안의 공기를 뽑아내지 않으면 필라멘트가 산화돼 금방 끊어진다.

진공 상태에서는 재료에 금속막을 깨끗하게 입힐 수 있다. 오염 입자가 적어 표면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공 상태에서 알루미늄을 유리면에 입히면 거울이나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반사경이 된다. 또 티타늄과 질소를 적당히 조절해 입히면 단단하면서도 아름다운 금빛을 띤다. 시계나 안경테와 같은 장식품을 만드는데도 진공기술이 필수적이다.

고진공과 초고진공 상태에서는 기체 분자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수십㎝에서 수천㎞까지 늘어난다. 이 현상은 디스플레이 장치를 제작하는데 응용된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브라운관 안에서 움직이는 전자는 다른 기체분자와 충돌해 없어지거나 휘어지지 않고 스크린에 제대로 도달해야 한다. 그래야 정확하고 선명한 화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0의 5승분의 1Pa(파스칼)의 초고진공 상태가 유지돼야 한다. 텔레비전이 오래되면 브라운관 내부의 진공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화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진공기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반도체 기판에 원하는 물질을 입히고 회로를 새기는 공정은 오염 입자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진공 어떻게 만드나

기체 분자들은 소리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제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다른 입자와 충돌한다. 한 기체 분자가 충돌 직후 또 다른 기체 분자와 충돌하기 전까지 이동할 수 있는 평균 비행거리는 60㎚(나노미터·1㎚=10의 9승분의 1m)에 불과하다. 이렇게 움직이는 기체 분자를 진공펌프를 이용해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초진공 상태를 만들 때에는 공기를 붙잡아 두는 흡착펌프를 이용한다. 이 펌프는 기체 분자들을 펌프 내 특정 공간이나 물질에 화학적으로 결합시켜 붙잡아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파리를 잡는 끈끈이와 같은 원리다.

펌프로 기체를 용기 밖으로 배출시키는 것으로만 진공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진공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진공장치 자체나 그 안에 넣은 재료에서 발생하는 기체를 최소화하는 표면처리 기술이 중요하다. 또한 외부에서 용기 내부로 기체가 스며들지 않게 하는 특수 용접기술이 필요하다. 현재 최첨단 기술로 만들 수 있는 최대 진공 상태는 1㎤당 단지 몇 개의 입자만 있게 하는 10의 16승분의 1 torr(토르·1㎜높이의 수은주 압력, 1torr=133.3Pa)정도다. 최근에는 진공 기술이 단순히 용기 안의 기체 밀도를 줄이는데 그치지 않고 용기 안에 들어가는 기체 성분을 조절하고 제어하는 차원으로 발전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도움말=한국표준과학연구원 진공기술센터 임종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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