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백지화를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두 달 가량 계속되고 있는 전북 부안읍. 추석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7일 읍내에서는 한가위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맘때쯤 어느 고장에나 걸려 있는 '고향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 대신 '핵은 죽음이다, 핵폐기장 결사반대' '핵없는 부안에 살고 싶다'는 노랑 플래카드와 깃발만이 나부끼고 있었다.시내 상가와 시장은 추석 경기가 완전히 실종된 채 웃음꽃이 사라졌다. 버스터미널 옆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가 끝이 보이지 않게 길게 늘어서 있었다. 기사들은 "승객이 없어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했다.
다방 여종업원 이모(23)씨는 "원전시설 유치 후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주민들이 매일 죽기살기로 시위에 매달리고 시내 분위기가 죽어 있는데 누가 한가하게 차를 마시러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격포에서 놀이공원을 운영하는 김모(45)씨도 "외지인들이 전혀 오지 않아 수입이 지난해 반도 안 된다"며 울상이다.
등교거부운동으로 공교육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 일부는 대책위가 열고 있는 '반핵학교'에 다니고 있으나 모든 학생이 참석하지 않는데다 장기적인 프로그램이 없어 교육 파행이 우려되고 있다. 최근에는 삼삼오오 모인 아이 중 하나가 노란 깃발을 들고 "핵폐기장 결사반대"를 외치면 나머지 아이들이 뒤따르며 "결사반대, 결사반대"를 따라 하는 새로운 놀이가 유행이다.
일부 흥분한 주민들의 돌출행동도 갈수록 과격화하고 있다. 지난 4일 밤 20대 괴한 4명이 부안군 하서면사무소 창문 15장을 쇠파이프로 깨고 젓갈탄 10여개를 사무실 안에 던진 뒤 달아나는 사건이 일어났다. 2일 밤에는 각목과 쇠파이프를 든 2,3명이 부안교육청 유리창 40여장을 깬 뒤 도주했으며, 같은 날 일부 주민이 한국수력원자력(주) 직원 김모(40)과장 등 3명을 부안성당으로 끌고 가 3시간 동안 감금, 자술서를 받은 뒤 풀어준 일도 발생했다.
/부안=최수학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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