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래난초. 지난 주에 드린 편지를 읽고 가까이에 있는 공원 잔디밭이나 풀섶에서 한번 눈 여겨 찾아 보셨나요? 도시에서 어찌 찾아 보겠냐구요? 아닙니다. 저는 신도시에 살고 있는데 그 한복판 둔덕이 있는 공원에서도 본 일이 있으니까요.누구에게나 타래난초를 만날 행운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확률은 적어도 요즘 유행하는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높습니다. 단 식물을 만나겠다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합니다. 마음을 바꾸어야 그에 맞추어 눈도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게 되지요.
어떤 이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식물을 관찰할 수 있도록 모드(mode)를 바꾼다'고 합니다. 물론 그 모드는 작은 식물인지 큰 식물인지, 아니면 곤충인지 화석인지, 그 대상에 따라 적절하게 바뀌어야 하겠지요. 이러한 작은 변화로 신기하고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또 다른 새 세상(자연세상)을 만날 수 있다면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모드를 바꾸어 마음을 쏟아내다 보면 타래난초, 그 작은 꽃에 드나드는 작은 벌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하고, 이 벌들이 꿀을 빨러 들어왔다가 머리에 리본처럼 얹고 나오는 꽃가루 덩어리도 보이고, 그러다 보면 도대체 이들이 어떻게 덩어리째 붙는지 꽃의 구조가 궁금해지지요.
이 정도의 관찰과 호기심이 있다면 정말 훌륭한 과학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화분덩어리(화분괴라고 부릅니다)가 꽃에 들어가는 벌의 몸체와 꼭 맞게 세팅되어 양면테이프를 이용한 듯 붙어 있다가 뒷걸음치는 벌과 함께 끌려나오는 모습과 과정을 알고 나면 절로 무릎이 탁 쳐집니다.
타래난초를 비롯한 난초과 식물들이 가장 진화했다는 다양한 근거들을 하나 하나 알아갈 때마다 놀라지만 때론 그 약삭빠름이 마음에 걸립니다. 타래난초과 식물들은 씨앗이 먼지처럼 작습니다. 그래서 씨앗에는 싹을 틔워 자력으로 양분을 만들 때까지 공급할 양분이 부족합니다. 대신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난균이라는 곰팡이균의 도움을 받아 균사를 통해 양분을 공급받지요.
사람들은 이러한 관계를 공생(共生)으로 보고 공생균이라고 하지만 초록 잎이 펼쳐지고 나면, 즉 스스로 광합성을 하여 더 이상 균들의 도움이 필요 없게 되면 타래난초의 태도가 돌변하여 자신의 몸에 침투된 균사를 녹여 관계를 정리합니다.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이야기 같지요. 평소 난균은 난초가 없더라도 토양의 다양한 유기물을 분해해 독자 생활이 가능하지만 난초는 그렇지 못함을 생각해보면 이들의 관계는 일방적인 착취로 보입니다. 혹 모르겠습니다.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한 그 어떤 주고받음이 그들 사이에 있을지는.
산길에 벌써 도토리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잔뜩 양분을 담은 도토리를 만드느라 애쓰고, 그나마 다람쥐나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그것이 안타까워 탄닌으로 떫은 맛을 내느라 애쓰는 참나무들을 올려다보며, 숲 속의 난초들은 미련하다고 비웃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얄미울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한 타래난초보다 오늘은 그 우직한 참나무가 마음을 잡습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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