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바퀴 4개짜리와 씨름하고, 밤에는 바퀴 8개짜리와 연애합니다."수입자동차 한국지사와 관련 홍보대행사 직원들이 매주 목요일밤 퇴근 후 서울 송파구 오륜동 올림픽공원이나 한강 고수부지 반포지구에 모여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긴다. 모임의 이름은 '8 휠즈(Wheels)'. 인라인스케이트에 달린 바퀴 숫자가 양쪽 합쳐 8개라는 의미와 바퀴로 상징되는 자동차 관련 종사자들의 모임이라는 연관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주 목요일인 4일 오후 7시, 반포대교와 한강 고수부지에 조명등이 불을 밝힐 무렵 '8 휠즈' 회원들이 모여서 스트레칭 체조를 시작했다. 총 회원은 20명 남짓이지만 이날 참가자는 손을래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회장을 비롯 모두 11명으로 평균 수준의 출석률이다. 폭스바겐을 수입하는 고진모터 임포트 강미선 부장의 아들 전재욱(원명초 4학년) 군도 열성 회원답게 맨 앞줄에서 열심히 체조를 따라하고 있다. 50년 가까운 세대차를 넘어 모두 한가지 목적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스트레칭도 열심히 하면 분당 8칼로리의 열량을 소비할 수 있어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스트레칭을 지도하는 백발의 청년은 윤대성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전무다. 대한롤러스케이트협회의 공인 강사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윤 전무는 무엇보다 안전을 강조한다. "헬멧, 무릎, 팔꿈치, 손목 보호대를 완벽하게 갖추지 않으면, 스케이트를 신지 못하게 합니다."
10분간의 스트레칭과 기본 자세 훈련을 마친 후 비로소 본격적인 스케이팅 훈련에 들어갔다. 처음 참가한 한 회원이 스케이트를 묶는 것에 어려움을 겪자 다른 동료가 도와주는 모습을 본지 카메라기자가 촬영하자, 주변에 있던 회원들은 일제히 "카메라를 의식한 연출"이라고 놀려댄다. 이 순간만큼을 모두들 초등학생의 동심으로 돌아간 듯하다.
'8 휠즈' 회원들은 대부분 인라인스케이트를 시작한지 2∼3개월 정도인 초보자들이다. 이미 '8 휠즈'를 졸업(?)한 회원들이 자기 회사에 돌아가 인라인스케이팅 동호회를 조직하고, 거기에 자극받은 초보자들이 '8 휠즈'에 가입하기 때문이다.
"턱과 무릎과 스케이트 앞이 일직선이 되게 자세를 잡으세요." 초보자의 자세를 바로 잡아주는 윤 전무의 눈빛이 날카롭다. 윤 전무의 지도로 간신히 걸음을 옮기던 벤츠 홍보대행사 퓨처컴 류주현씨가 연습을 시작한지 30분이 채 안돼 주저 앉았다. "오늘 처음 스케이트를 신어봤습니다. 어젯밤 걱정이 돼서 스트레칭을 했는데 무리했는지 온 몸이 쑤시네요. 그래도 몇 걸음이라도 걸을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라며 환하게 웃는다.
손 회장도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 즐겁다"며 "겉보기와 달리 관절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이기 때문에 장년층에게도 유익한 운동"이라고 인라인스케이트 예찬론을 펼쳤다. 아버지 손회장과 같이 이 모임에 참가한 승희(숙명여대 대학원)씨는 "요즘 내 또래 친구들 중 남자들은 90%, 여자 중에는 50% 정도가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줄 안다"고 말해 요즘 20대 사이의 인라인스케이트의 열기를 짐작케 했다.
7시 50분쯤 한자리에 모여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8 휠즈' 회원들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야외에서 바람을 마음껏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소박한 발언부터, "시속 20㎞의 속도로 시속 200㎞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자동차업계 종사자다운 발언 등이 쏟아진다. 손 회장이 "한바탕 땀을 흘린 후 야외에 자장면을 배달시켜 함께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고 색다른 이유를 고백하자 모두 공감의 웃음을 터뜨린다.
낮에는 자동차 1대 판매량 때문에 서로 울고 웃는 경쟁자들이지만, 함께 구슬땀을 흘리면서 어느새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진한 연대감이 쌓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모임을 뒷바라지 하고 있는 퓨처컴 오경희 차장은 "인라인스케이트로 쌓은 동지애를 바탕으로 올 겨울에는 스노보드에 도전할 생각입니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