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적을 가진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 문제로 고민하게 된다.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군대에 가는 것이 원칙이다. 나는 시력이 무척 안 좋아서 은근히 '방위'를 기대했는데 애석하게도 현역이 되었다. 더 놀라운 일은 논산 훈련소에서 벌어졌다. 황당하게 전경에 차출된 것이다. 군대 오기 전에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지만 내가 전경이 된 사실에 왠지 모르게 자괴감이 느껴졌다. 내무반의 경직된 분위기도 너무 싫었다.궁리 끝에 취사병으로 자원해 들어갔다. 솔직히 말해서 군대 올 때 30개월 때우고 나간다는 생각으로 왔지만 한편으로는 책 읽을 시간이 약간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바람이 마침내 취사장에서 이루어졌다. 취사반 막내로 고참들 눈치 봐가며 밥하기, 국 끓이기, 반찬 만들기를 배우던 어느 날 바로 위 고참이 취사장 선반 위에 뒹굴고 있던 작은 책을 던져주며 "보려면 봐. 나는 재미없더라"고 해서 받아 든 책이 삼중당 문고로 나온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였다. 당시에는 흔하디 흔한 삼중당 문고였지만 그 순간에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책을 주머니에 넣고 틈날 때마다 읽었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그런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책에 빨려들어 갔고 책의 주인공 니나 부슈만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끊임없는 청춘의 방황 속에서 자칫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데도, 그것을 고통스럽게 극복해 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그 감동을 주체하지 못해 시위현장에서 붙잡혀 강제징집 당한 친구에게 위로의 편지를 한답시고, 주절주절 적어 보냈던 기억도 난다. 사실 니나 부슈만처럼 안락한 삶이나 사랑보다도 자신의 신념과 정신적 자유를 더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위선과 가식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삶을 한 차원 높게 승화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적어도 나에게는 왜 사는가는 고사하고 살고 있다는 감각조차 무뎌지고 있는 군대에서 실존의 문제를 고민한다는 것은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의 한가운데'를 통해 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다시 고민하게 되었고, 덕분에 제대하는 날까지 독서편력을 계속할 수 있었다.
내 밑으로 들어온 졸병 중에서도 책을 열심히 보게 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내가 다 본 책을 빌려 읽다가 나중에는 나보다 먼저 신간을 사서 읽었고, 내가 제대하기 전날 밤에는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생의 한가운데'가 없었다면 삭막한 군대에서 어떻게 이런 지적 인연이 가능했겠는가? 그것이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강인황 이산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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