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민 어린이사·조은수 그림 창작과비평사 발행· 8,000원<내 동생은 2학년 구구단을 못 외워서 내가 교실에 끌려갔다 아이들이 보는데 내 동생 선생님이 "야, 니 구구단 좀 외우게 해라." 나는 쥐구멍에 들어갈 듯 고개를 숙였다 교실을 나와 동생에게 '야, 집에 가서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 봐." 한숨을 푸우 쉬고 들어갔다 가니 밖에서 동생이 생글생글 웃으며 놀고 있었다 밥 먹고 자길래 이불을 덮어주었다 구구단이 밉다>내>
12년 전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쓴 시다. 구구단을 못 외우는 동생 때문에 2학년 교실에 불려가 망신을 당한 뒤 잠시 동생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만, 집에 돌아와 천진하게 노는 동생을 보고는 '구구단이 밉다'고 말하는 마음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내 동생'은 이 시로 만든 그림책이다. 꾸밈없고 진실한 어린이의 마음이 담긴 시도 좋지만, 그림이 매우 독특하다. 어린이책 기획자 겸 번역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조은수씨가 그렸는데, 자유분방한 선과 강렬한 색채의 과감한 표현이 눈길을 확 잡아끈다. 다소 파격적인 그림이 동생 때문에 망신 당한 오빠의 부끄러움과 분노, 갈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본문 글자꼴과 글자 배치도 여느 그림책과 다르다. 일반적인 인쇄용 활자 대신 종이판화로 새겨서 만든 고딕체를 썼다. '동생은 한숨을 푸우 쉬고/교실에 들어갔다'는 구절은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박혀있고, 동생 선생님이 야단 치는 말은 마치 세찬 바람처럼 사선으로 쏟아진다. '나는 구구단이 밉다'에서 '밉다'는 더 크고 굵게 처리했다. 글자 모양과 배치가 아이의 마음 상태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치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멋진 그림책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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