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학생 간에 교육적 관계가 형성될 때, 즉 신뢰와 사랑이 넘칠 때 비로소 교육이 교육답게 이루어진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공자의 말도, 그들 간에 신뢰와 사랑이 넘칠 때 성립하는 말이다.지난 10여년간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교육개혁안들이 계획되고 또 추진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현실은 학교붕괴, 교실붕괴, 조기유학, 교육이민, 사교육 팽창 등으로 인해 국가적 위기상황에 처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위기의 핵심은 교사와 학생 간에 교육적 관계의 붕괴 혹은 부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사는 학생들로부터 신뢰받아야 하고 또 교사가 학생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사제간의 신뢰와 사랑이란 강요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당사자들의 자발성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가 학생들로부터 신뢰받기 위해서는 교과와 생활 및 진로 지도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다양화 전문화 특성화가 중시되는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교사를 신뢰할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울러 교사는 학생들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에게 무관심하거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교사를 신뢰하고 따를 학생들도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교육 현실을 개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타율적 개혁이 아니라, 교사들의 자기반성과 함께 전문성 신장을 위한 자발적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신장된 교사의 사명감과 전문성에 근거하여 자율성이 보장되고 또 재량권이 강화되어야 한다.
예컨대 교사가 개별 학생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그에 적절한 교육 내용이나 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성적처리와 생활 및 진로 지도를 위한 재량권이 강화되어야 한다. 물론 그러한 자율성과 재량권에 대한 책임은 교사 자신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
교직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는 자질과 능력을 갖춘 외부 전문가들이 쉽게 교단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한 번 교사는 영원한 교사'라는 인식을 타파하여 임용된 이후에라도 지속적인 점검을 통해 일정 수준의 자질과 능력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자격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울러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평가 방안을 마련하여 나이와 경력이 같아도 자질과 능력이 뛰어난 교사가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편, 교육 당국이나 학부모들이 해야 할 일은 간섭과 통제가 아니라 제반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예컨대, 급변하는 사회에서 교사들이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신장시킬 수 있도록 연수 기회를 대폭 확대한다거나, 개인 연구실을 마련해 준다거나, 시설과 설비를 개선한다거나, 수업 시간수를 줄인다거나, 행정적이고 사무적인 업무를 대폭 줄이는 것 등이다.
특히 교사를 전문가로 인정하고 교육 문제는 교사들에게 믿고 맡기는 사회적인 풍토를 조성하고, 그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사들이 미래의 주역을 육성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전문가로서 교육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요컨대, 우리 교육의 개선·발전은 교사와 학생 간에 교육적 관계가 회복될 때, 즉 신뢰와 사랑이 충만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교사 스스로가 교과와 생활 및 진로 지도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며, 교육 당국이나 학부모들도 교사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재량권이 강화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할 것이다.
백 순 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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