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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가 나인 것

입력
2003.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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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나카 하사시 지음·햇살과 나무꾼 옮김 사계절 발행·7,500원아이를 볼 때마다 잔소리라도 한 마디 하지 않으면 뭔가 섭섭한 듯이 생각하는 엄마, '너는 형편없는 애야'라는 말을 아이한테 하는 인사말쯤으로 아는 엄마. 고맙기는커녕 말 못 하는 병에라도 걸렸으면 싶다. 아무리 데릴사위라지만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싱글싱글 웃는 아버지, 자식들과 나란히 야단맞고도 못 들은 척하는 아버지.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도저히 존경할 수 없다. 엄마 아빠가 지어준 히데카즈(秀一)라는 멋진 이름도 버겁고 싫다. 집을 나가고 싶다…. 그리고 정말 가출했다.

일본 작가 야마나카 히사시의 장편동화 '내가 나인 것'은 1969년 출간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자' 같은, 착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기 전 6개월 간 잡지에 연재됐을 때 선생님과 학부모로부터 불만의 편지가 쇄도했다. '교육적이지 않다'는 비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속 엄마는 배 아파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며 함부로 대하고 아이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는, '비뚤어진' 모습이었다. "너란 애는 뭘 시켜도 변변히 하는 게 없구나. 좀 노력해서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해 봐"라는 말을 듣고는 정말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할 생각에 히데카즈는 가출했다. 집 떠나 만난 할아버지와 손녀딸 나쓰요와 함께 지내면서 히데카즈는 홀로 서는 법을 배우고 자신감을 얻는다.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화를 내면서 히데카즈를 두들겨 팬다. 몸을 내맡겼던 아이는 어느 순간 "그만 좀 해요!"라고 소리치며 일어난다. 달라진 아이의 기세에 놀란 엄마는 "내가 죽어야지! 죽어야지!"라고 몸부림친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너무 불쌍하다. '나더러 쓰레기라느니 머저리라느니 겁을 줘도 사실은 엄마가 젖먹이나 다름없구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이렇게 울부짖다니'라는 생각이 든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쌓아놓은 성(城)에서 엄마는 아이를 지배하는 왕 같았다. 엄마의 성은 이렇게 무너지기 시작한다.

돈에 눈 먼 친척 마사나오의 음모에 나쓰요가 걸려들 것 같다. 본 적 없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나쓰요는 엄마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마사나오의 꾐에 빠졌다. 히데카즈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쓰요를 구해내고 과거를 감추느라 쉬쉬했던 할아버지에게서 나쓰요 부모님의 사연도 듣는다. 이 모든 일을 겪은 여름 히데카즈는 훌쩍 자랐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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