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깨롱 간깨롱 부뚜막에 누룽지를 준깨롱 묵응깨롱 꼬신깨롱 더 달랑깨롱 안 운깨롱 묵은깨롱 겁나게 배부른깨롱> 전래동요 '깨롱깨롱'이다. 반복되는 사투리의 리듬이 재미있고, 누룽지 달라고 졸라서 실컷 먹고 좋아하는 아이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나타나있다. 이번 주 신간인 백창우의 '노래야, 너도 잠을 깨렴'은 이처럼 우리말의 맛이 살아있고, 노래를 품은 시를 잔뜩 소개하고 있다. 오랑깨롱>
소리 내서 읽으면 그대로 노래가 되는 문장을 읽는 것은 즐겁다. 시가 아닌 산문도 숨어있는 호흡의 물결로 보이지 않는 리듬을 만들어내곤 한다. 반면에 말의 숨길을 끊는 문장이나 호흡을 괴롭게 만드는 노래는 영 불편하다.
유감스럽게도 '애국가'나 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이 그러하다. '그리운 금강산'의 한 구절 '그리운 만 이천 봉'은 '그리운 만'에서 호흡이 끊어져 '그리운만/이천봉'이 되어버렸다. 애국가의 첫 구절 '동해물과 백두산이'에서 음악적 액센트는 첫음절 '동'이 아닌 두번째 음절 '해'에 놓여있어 비평가들로부터 애국가가 아니라 '해물찬가'라는 빈정거림을 듣곤 한다. 말이 비틀어지면 노래도 일그러진다.
우리말의 고유한 맛과 리듬이 잘 살아있기로는 판소리 사설이 으뜸일 것이다. 판소리 사설이 아무리 길어도 수루룩 한걸음에 내닫는 것은 호흡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입에 착 달라붙는 말, 맛있는 말, 제멋에 겨워 넌출넌출 흘러가는 말을 판소리 사설에서 즐길 수 있다. 예컨대 판소리 '심청가' 중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죽는 대목인 '범피중류'는 말과 음악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인당수 거친 파도며 심청이의 어지러운 심경을 바로 눈 앞에서 보듯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 화면도 이보다 더 생생하기 힘들 정도다.
백창우는 '좋은 시는 모두 노래가 될 수 있다'면서 딱딱하게 굳은 말이 차고 넘치는 오늘의 세태를 안타까워 한다. 말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세상은 분명 멋진 세상일 것이다. 글쟁이들은 우리말을 가꾸는 일꾼으로서, 그런 세상을 앞당기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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