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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 "맛"있는 우리말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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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 "맛"있는 우리말이 그립다

입력
2003.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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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깨롱 간깨롱 부뚜막에 누룽지를 준깨롱 묵응깨롱 꼬신깨롱 더 달랑깨롱 안 운깨롱 묵은깨롱 겁나게 배부른깨롱> 전래동요 '깨롱깨롱'이다. 반복되는 사투리의 리듬이 재미있고, 누룽지 달라고 졸라서 실컷 먹고 좋아하는 아이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나타나있다. 이번 주 신간인 백창우의 '노래야, 너도 잠을 깨렴'은 이처럼 우리말의 맛이 살아있고, 노래를 품은 시를 잔뜩 소개하고 있다.

소리 내서 읽으면 그대로 노래가 되는 문장을 읽는 것은 즐겁다. 시가 아닌 산문도 숨어있는 호흡의 물결로 보이지 않는 리듬을 만들어내곤 한다. 반면에 말의 숨길을 끊는 문장이나 호흡을 괴롭게 만드는 노래는 영 불편하다.

유감스럽게도 '애국가'나 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이 그러하다. '그리운 금강산'의 한 구절 '그리운 만 이천 봉'은 '그리운 만'에서 호흡이 끊어져 '그리운만/이천봉'이 되어버렸다. 애국가의 첫 구절 '동해물과 백두산이'에서 음악적 액센트는 첫음절 '동'이 아닌 두번째 음절 '해'에 놓여있어 비평가들로부터 애국가가 아니라 '해물찬가'라는 빈정거림을 듣곤 한다. 말이 비틀어지면 노래도 일그러진다.

우리말의 고유한 맛과 리듬이 잘 살아있기로는 판소리 사설이 으뜸일 것이다. 판소리 사설이 아무리 길어도 수루룩 한걸음에 내닫는 것은 호흡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입에 착 달라붙는 말, 맛있는 말, 제멋에 겨워 넌출넌출 흘러가는 말을 판소리 사설에서 즐길 수 있다. 예컨대 판소리 '심청가' 중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죽는 대목인 '범피중류'는 말과 음악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인당수 거친 파도며 심청이의 어지러운 심경을 바로 눈 앞에서 보듯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 화면도 이보다 더 생생하기 힘들 정도다.

백창우는 '좋은 시는 모두 노래가 될 수 있다'면서 딱딱하게 굳은 말이 차고 넘치는 오늘의 세태를 안타까워 한다. 말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세상은 분명 멋진 세상일 것이다. 글쟁이들은 우리말을 가꾸는 일꾼으로서, 그런 세상을 앞당기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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