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뉴욕 타임스의 자매지인 골프다이제스트가 미국 내 유명기업 최고경영자에 대한 흥미 있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지난 3년간의 주식 거래실적과 최고경영인의 골프 핸디캡을 분석한 것이었다. 경영실적이 좋은 상위권 기업(25%) 경영인의 평균 핸디캡은 12.4, 중위권기업(50%) 경영인의 핸디캡은 14.6, 하위권기업(25%) 경영인의 핸디캡은 17.2로 나타났다는 것이 골자다. 이를 토대로 골프다이제스트는 "골프를 잘 하는 사람이 경영도 잘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골프 격언 중에 '100대를 치는 사람은 골프를, 90대를 치는 사람은 가정을, 80대를 치는 사람은 사업을, 70대를 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소홀히 한다'는 말이 있다. 골프를 너무 못 치거나 지나치게 골프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최고경영자 치고 골프를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골프를 잘 하기 때문에 최고경영자에 올랐는지, 최고경영자에 올랐기 때문에 골프를 잘 치는지는 모르지만 '골프를 일하듯, 일을 골프하듯' 하면 성공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 이들의 지론이기는 하다.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골프를 즐긴다는 소식이 자주 들린다. 연초 외국 잡지에 김 회장이 골프를 시작했다는 뉴스가 실린 이후 전 대우그룹 계열사 사장과 함께 골프를 쳤다는 등 골프와 매우 가까워졌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김 회장이 골프채를 잡은 것은 의사의 권유때문이라고 한다. 심장병에다 장협착으로 고생하는 김 회장에게 의사들이 적당히 걷고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골프를 적극 권했다는 얘기다. 시간 보내는 것이 고역이기도 했을 김 회장에겐 시간도 잘 가고 운동도 되는 골프가 안성맞춤의 소일거리인 셈이다.
■ 김 회장을 아끼는 재계 인사들은 '만약 김우중 회장이 골프를 했다면 대우그룹이 오늘과 같은 운명을 맞았을까'하고 가정하며 골프를 너무 몰랐던 김 회장의 단점을 지적하곤 한다. 김 회장이 당시 5대그룹 중 유일하게 골프를 하지 않는 총수이고 5대그룹 중 유일하게 퇴출당한 그룹이 대우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시각이 숨어 있다. 별로 운동도 안되고 시간만 낭비한다며 골프를 하던 임원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그가 이제야 골프와 조우한 것은 그런 의미에선 불행이다. 인생 그 자체보다 더 인생답다는 골프에서 자만과 겸손의 의미, 좌절과 분노에서 헤어나오는 지혜 등을 터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해보게 된다.
/방민준 논설위원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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