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장외 주식시장의 주도주는 단연 삼성생명 주식이다.올 초만 해도 주당(액면가 5,000원) 20만원 안팎에 머물던 이 회사 주가는 꾸준한 사자세 속에 이달 들어 무려 36만원대로 껑충 뛰어올랐다. 상장주식의 그 어떤 테마종목도 흉내내기 힘든 상승랠리다. 거래조차 뜸하던 비상장 생보사의 주식이 느닷없이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15년 해묵은 숙제(생보사 상장)를 해결할 'D 데이'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당초 8월말을 생보사 상장방안 확정 시한으로 정했던 정부는 의견수렴 작업에 차질을 빚으면서 일단 추석 연휴 이후로 일정을 연기했다. "올해 안에 상장방안이 나오긴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지만, 이번만큼은 어떤 형태로든 '해법'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다. 이번엔 과연 주주와 계약자가 모두 공감할만한 '솔로몬의 지혜'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주식회사 vs 상호회사
생보사 상장 논란은 생보사의 성격을 과연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계약자 입장을 대변하는 시민단체들은 국내 생보사들이 상법상 주식회사이지만, 계약자의 돈으로 운영되는 만큼 실질적으로는 상호회사에 가깝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예컨대 삼성생명의 경우 75조원의 자산 중 회사 자본금은 1,000억원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모두 고객의 재산이기 때문에 회사의 성장에 계약자들이 절대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국내 생보사들이 회사 설립 후 30년 이상 보험료율을 보수적으로 책정한 뒤 연말에 정산차원에서 이익을 계약자에게 돌려주는 유배당상품만 판매해 온 점 역시 국내 생보사의 상호회사적 성격을 대변하고 있다는 게 시민단체의 논거다. 배당을 받는다는 것은 보험계약자가 '준(準)주주'적 지위를 갖고 있다는 뜻이며 따라서 상장차익도 주주와 계약자가 당연히 나눠 가져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에 대해 생보업계는 미국 등 보험선진국에서도 상품전략의 일환으로 주식회사가 배당상품을, 상호회사가 무배당상품을 판매하는 사례가 많다며 '유배당상품 판매=상호회사'주장은 넌센스라고 반발하고 있다.
최대 걸림돌은 삼성·교보 내부유보금 처리
시민단체와 업계의 상장차익 배분 논쟁은 구체적으로는 삼성과 교보생명이 계약자 몫으로 갖고 있는 '내부유보금'의 처리문제로 좁혀진다. 생보사 상장은 1989년과 90년 교보와 삼성생명이 상장을 전제로 각각 자산재평가를 실시하면서 처음 쟁점으로 떠올랐다. 참여정부 들어 생보사 상장이 서둘러 진행되는 이유도 당시 재평가차익에 대한 법인세 특례면제기한이 올해 말이기 때문이다.
자산재평가를 통해 두 회사는 각각 2,927억원(삼성)과 2,197억원(교보)의 재평가적립금을 얻었다. 이 금액은 당시 재무부 지침에 따라 주주지분으로 30%가 책정돼 자본금으로 전입됐고, 나머지 70%는 계약자 몫으로 돌려졌다. 계약자 몫 70% 가운데 40%는 계약자 배당재원이나 공익재단 출연으로 쓰였고 나머지 30%(삼성 878억원, 교보 662억원)는 계약자 몫임에도 자본계정(자본잉여금 항목)에 편입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생보사 상장논쟁의 해결 열쇠는 결국 계약자 몫이면서 자본금 계정에 잡혀 있는 이 내부 유보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시민단체들은 당시 재무부 지침을 근거로 이 돈은 원칙적으로 계약자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계약자에게 돌려주되, 자본금에 편입돼 있는 주주 몫과 동일하게 주식으로 전환해 무상으로 나눠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내부 유보금을 모두 주식으로 나눠줄 경우 계약자들은 삼성생명의 경우 최대 30.2%, 교보생명은 24.7%의 지분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생보업계는 "주식배분은 주식회사의 원리에 반하며 주주의 법적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주식배분이 결정될 경우 상장포기도 불사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 다만 "내부유보금 원금 자체를 현금배당 형식으로 계약자에게 나눠주는 방안은 검토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정부 "계약자 지분인정"원칙 선언할 듯
정부는 일단 "내부유보액이 지급여력비율 산정 때 자본으로 합산되는 등 현실적으로 회사가치 증대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며 계약자의 지분을 일정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다만 상장방안에는 "계약자 몫의 자본 기여도가 전체 지분의 몇 %로 인정된다"는 식의 대원칙만을 선언하고, 이 지분을 주식으로 줄 것인지, 현금으로 환산해 줄 것인지, 실체가 애매한 계약자 대신 공익재단에 출연토록 할 것인지 등의 방법론 자체는 생보사가 자율 결정토록 일임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계약자 몫의 주식이나 현금배분을 강제하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생보사의 주식회사로서의 법적 지위를 손상시키지 않는 절충안이 되리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삼성생명의 경우 계약자 몫(내부유보금)의 자본기여도를 전체 삼성생명 지분의 10∼15% 정도로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시민단체의 주장대로 계약자를 주주와 동일시했을 때 계약자들에게 돌아갈 지분(30.2%)의 3분의1 내지 2분의1 수준만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다. 이 지분을 주당 70만원(이건희 회장이 삼성차 채권단에 제공한 주식가액)으로 계산해 현금으로 환산하면 1조4,000억∼2조1,000억원이 된다. 과연 생보업계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이 정부안을 받아들여 상장에 응할지는 차후의 문제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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