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화물여객선 만경봉호가 4일 올들어 세 번째로 일본의 니가타(新潟)항에 들어왔다.만경봉호 하면 한국의 젊은 층은 지난해 가을 부산 아시안게임 때 이 배를 타고와 숙소로 삼았던 북한의 '미녀 응원단'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1974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저격사건의 범인 문세광(文世光)이 만경봉호에서 저격지령을 받았다던 수사 발표를 기억하는 중장년도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재일동포 북송사업, 공작선, 밀수선 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입항 때마다 반대 시위가 벌어진다.
1959∼84년 9만3,340명의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 북한에 영주 귀국했다. 여기에는 재일동포와 결혼한 약 1,800여명의 일본인 아내들도 포함돼 있다. 1971년 일본 내 친족들의 귀국 재일동포 방문용으로 취항한 배가 바로 만경봉호다.
지금은 북한을 탈출한 북송 재일동포와 일본인처, 그 자녀들이 중국을 떠돌며 일본 망명을 시도해 일본도 탈북자 문제의 당사국이 됐다.
한해 20∼30차례 원산과 니가타를 오가며 그래도 유일하게 일본과 북한을 이어주던 이 배는 올해 1월 이후 7개월여 운항을 중단했다가 8월25일 운항을 재개했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사건이 사실로 밝혀져 대북 비난여론이 거세진 데 이어 만경봉호를 이용한 대량살상무기 부품 수입 의혹을 탈북자들이 미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하면서 일본 정부가 선박검사 강화 방침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8월25일 일본 당국의 검사에서 몇 가지 안전미비 사항을 적발 당한 만경봉호는 고분고분 시정계획서를 제출하고 돌아갔고, 2일 새 장비의 사진과 구입 영수증을 첨부한 시정확인서를 미리 보내 4일의 입항 허가를 받았다.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 북한은 자기 잣대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만 했지만, 같은 시기 니가타에서는 일본의 법 집행을 성실히 받아들인 셈이다. 이게 북한이 말하는 '우리 민족 제일주의'는 아닐 것이다.
한국 정부도 남북 교류·협력이 북한에 한국이나 국제사회의 기준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곰곰이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신 윤 석 도쿄 특파원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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