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가 4일 대립관계에 있던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며 팔레스타인 지도부와의 갈등 봉합에 나섰다.압바스 총리는 또 아라파트 수반 및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도 상반된 자세를 취함으로써 단계적 중동평화안(로드맵) 이행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 지 주목된다.
압바스 총리는 이날 취임 100일을 기념한 의회 연설을 통해 "아라파트 수반은 팔레스타인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합법적인 지도자"라며 이―팔 사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미국이 아라파트를 배제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는 또 "미국은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의 도발행위를 막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보이지 않았으며 이스라엘 측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며 이례적으로 미국을 정면 비난했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그의 발언은 지금까지 자신의 입장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4월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총리에 취임한 압바스는 미국 주도의 중동평화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진행해 왔다.
미국은 강경파인 아라파트가 평화안 이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그를 제외하기를 원했고, 아라파트를 자치정부 청사 안에 고립시킨 이스라엘은 공공연히 그를 추방시킬 것이라고 위협해 왔다.
이 과정에서 압바스는 팔레스타인 주요 무장단체의 3개월 한시적 휴전 선언을 이끌어내는 등 일부 성과를 얻기도 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다는 내부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이날 압바스 총리의 발언은 압바스가 100일 동안 이어진 아라파트와의 대결에서 결국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압바스 총리가 이날 아라파트의 측근이자 대변인 역할을 맡아 왔던 사에브 에라카트 전 팔레스타인 지방정부 장관을 대 이스라엘 협상단의 수석 대표로 재임명한 것도 이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영향력이 약화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낳았던 아라파트는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중동평화안 이행에 핵심 변수 역할을 하고 있다.
압바스 총리의 의회 발언으로 그의 중동평화안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는 "의회가 전권을 줄 때에만 중동평화안이 진전될 수 있다"며 "의회는 나를 지지하든지, 아니면 집으로 돌려보내든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해 여전히 중동평화안 이행에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와 관련, 이날 의원 18명은 그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관측통들은 그의 입장 선회가 미국에 대한 전면적인 배신이라기보다는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적인 후퇴일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야심차게 추진했던 중동평화안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자신에 대한 지지율 마저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아라파트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반면 압바스 총리가 극적인 입장전환을 통해 미국을 등지고 아라파트와 전면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한다면 어렵게 마련된 중동평화안은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아라파트는 "중동평화안은 폐기됐다"며 "이는 전적으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침공을 감행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의 반응도 관심이다. 중동평화안을 적극 중재했던 미국으로서는 자칫 압바스 총리라는 지렛대를 잃고 중동사태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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