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무장관 회담을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윤영관(尹永寬) 외교부장관 일행은 3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기대 밖 환대'에 고무된 표정이다.이날 오후 3시10분쯤 미 국무부를 찾은 윤 장관은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단 둘이서 백악관으로 직행, 부시 대통령을 예방하고 북한 핵 문제 등에 대해 20여분간 얘기를 나눴다.
부시 대통령은 윤 장관이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 들어서자 "내 친구는 잘 있느냐. 나는 그를 좋아한다"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각별한 안부를 전했다고 윤 장관이 밝혔다.이 자리에는 우리측 배석자는 없었으며, 짐 모리아티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기록을 맡았다.
백악관은 이날 오전에야 우리측의 사전면담 요청에 'OK'사인을 보내왔다. 역대 외무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할 때마다 백악관 예방을 원했지만 미측은 대통령의 바쁜 일정을 이유로 번번히 퇴짜를 놓았었다. 이번 면담은 1993년∼94년 북한 핵 위기 당시 한승주(韓昇洲) 외무장관(현 주미대사)이 빌 클린턴 대통령을 수 차례 만난 이후 근 10년 만의 일이다. 한 대사는 "당시는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대화하는 도중 클린턴 대통령이 자리에 함께 하는 형식이었다"며 "이번처럼 백악관 집무실에서 면담이 이뤄진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파격이 부시 대통령이 윤 장관의 얘기를 듣기 위한 목적인지, 한국 정부에 모종의'주문'을 하기 위해서인지는 분명치 않다. 윤 장관은 부시 대통령에게서 특별한 요청은 없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 외에 한국의 경제상황과 한국인들의 대북인식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표명했다. 윤 장관이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한이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했다는 얘기를 꺼내자 부시 대통령은 한국 사람들은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또 윤 장관이 남북한 경제교류와 개성공단 사업의 진행 상황을 설명하자 부시 대통령은 "흥미 있다"며 관심을 보였다.
우리 정부는 이날 면담 성사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윤 장관은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와 돈독함의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또 부시 대통령이 6자회담의 성공에 대한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는 평도 나온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부시 대통령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날의 행보는 대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한국 정부와 파월 장관 등 미국 내 온건파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현 국면에서 부시 대통령의 다른 한 쪽 귀는 강경파에 열려 있다고 봐야 한다"며 강경파 퇴조론을 경계했다. 미국이 외무장관회담에서 북한의 마약 및 무기 수출에 대한 해상 저지 방침을 거듭 천명한 것은 미국의 대북 양면작전을 잘 보여준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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