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의 부실화를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발동하는 '적기시정조치'의 실효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제도 도입의 본래 취지는 실적이 좋지 않은 금융회사의 건전경영을 유도하겠다는 것이지만, 시정조치 자체가 시장에선 사실상의 '퇴출조치'로 용인되면서 부작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1998년 외환위기 이후 전 금융권에 도입되기 시작한 적기시정조치 제도는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금융당국은 해당 금융회사의 부실 규모나 건전성 수준에 따라 경영개선권고→요구→명령 등의 단계를 차례로 밟아 필요한 경영개선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다.
예컨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국제기준인 8%에는 못 미치지만 6%가 넘는 은행에 대해서는 경영개선권고 조치를 내려 자본금 증액, 부실자산 처분 등을 권고하는 것이다. 경영개선권고를 받은 금융회사는 금융당국에 조치 내용이 반영된 경영정상화계획을 제출해 1년 이내에 이를 이행해야 하고, 이행치 못할 경우 다음 단계(경영개선요구)의 제재를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이 같은 경영개선권고 조치가 건전경영을 유도하고 부실을 예방하는 기능보다는, 대외적으로 '부실금융기관'의 낙인을 찍어 도리어 해당 금융회사의 시장 퇴출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 금융계 관계자는 "아무리 낮은 단계의 시정조치가 내려지더라도 해당 금융회사는 적기시정조치의 대상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예금고객 이탈(뱅크 런) 사태 등으로 사실상 파산위기에 직면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같은 역기능 때문에 금융당국조차 최근에는 적기시정조치 발동을 애써 자제하는 분위기다. BIS 비율이나 경영실태평가 기준 미달로 적기시정조치 대상이 됐더라도, 해당 금융기관의 사정을 감안해 조치권 발동은 유예해주고 있다. 당국은 올 들어서만 동양생명, 우리카드, 제일투자증권 등에 대해 "경영개선 노력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어정쩡한 이유로 시정조치 발동을 일제히 보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대다수 부실 금융회사들이 적기시정조치에 이어 퇴출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시장에선 적기시정조치라는 표현 자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며 "제도 운용상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선 제도 운용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현행 적기시정조치의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정조치의 단계를 가능한 한 축소하고, 조치의 내용도 징벌 보다는 사전 예방 위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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