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 중양일 분천헌연도(丙戌 重陽日 汾川獻宴圖)''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 1526년, 견본담채, 26.8cm X 21.4cm 보물 제1202호, 농암 종가 소장)' 중.
"가기도 좋을시고 부모님 찾아오는 길이여" 한가위를 앞둔 초가을 아침. 효자로 이름난 조선의 문인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가 쓴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글을 읽는 느낌이 남다르다.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기기란 다하여라'는 옛 가르침을 잘 따라 가슴 속에 회한을 남기지 않은 이가 과연 몇몇일까. 그런데 농암 이현보의 '그리운 어머니' 얘기와 이 잔치 그림을 보면 이 분은 좀 달랐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효성이 지극했던 이현보는 관직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틈틈이 고향(경북 예안)의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부모의 사랑도 특별해서 어느 해인가는 농암이 동부승지를 제수받고 귀향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농암의 어머니가 '먹기도 좋을시고, 승정원의 선반(밥을 가리키는 궁중 말)이여, 놀기도 좋을시고 대명전(大明殿) 기슭이여, 가기도 좋을시고 부모님 찾아오는 길이여" 라는 한글 노래를 지어 아이들과 계집종에게 가르쳤다가 아들을 위해 부르게 한 일도 있었다.
이 무렵 경상감사로 있던 신대용이라는 이는 농암 어머니의 장수를 축하하는 뜻에서 잔치를 벌이고, "부모님 늙지 않고 오래 사시어, 학같이 하얀 머리칼 드리우고 경사스런 잔치에 나란히 앉으셨네" 라는 시를 짓기도 했는데, 농암은 평생 부모님을 봉양하면서 기쁜 일을 해 드린 일이 여럿 있었지만 특히 이 두 가지가 가장 흐뭇한 일이었노라며 이 일을 '애일당희환록(愛日堂戱歡錄)'에 기록했다. 효성스런 자식을 둔 부모, 부모에게 효성을 다 하는 아들의 정겹고 따뜻한 얘기다. 글 제목에도 나오는 '애일당'은 농암 이현보가 40대 후반 무렵, 부모님을 위해 아름다운 마을 경치가 잘 보이는 낙동강 줄기 분천(汾川)가에 집을 짓고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 하루하루를 사랑한다'는 뜻을 담아 지은 별당이다. 농암은 그리고 이곳의 생활 중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 즐거움(具慶)'을 그림으로 그려 '애일당구경첩'을 남겼는데 '분천헌연도'도 그 중의 한 폭이다.
'병술년(1526) 중양일(重陽日, 9월9일) 분천에서 잔치를 드림'이라는 이름의 이 그림의 배경은 날씨는 맑게 개고 강 물결 잔잔한 가을날의 낙동강변이다. 두개의 햇빛 가리개 안에는 남자 손님, 여자 손님이 각각 자리를 잡고 앉아 술과 음식, 그리고 피리 젓대 해금 장구를 연주하는 연주가와 춤추고 노래할 여기(女妓)를 고루 갖춰 마련한 잔치를 즐기고 있는데, 잔치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직 분위기가 무르익은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배 위에서 춤을 추는 여기를 위해 선채로 젓대를 불고 장구를 치는 두 연주자가 한껏 흥을 돋우려 애쓰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그림을 보는 동안 농암이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린 일이 여럿 있지만, 이 중에서…"라고 한 말이 자꾸만 입에 돈다. 이번 한가위에는 이런 말을 한 번 해 볼 수 있을까.
송혜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 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