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죽음의 한 형식', '햄릿' 등을 연출한 '문제적' 연출가 이윤택이 자신이 직접 쓰고 연출한 '문제적 인간 연산'을 무대에 올린다. 유씨어터 창단 기념작으로 1995년 탤런트 유인촌을 주인공으로 세워 초연 된 이래 8년 만에 재공연 되는 '문제적 인간, 연산'은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을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가 결국 좌절하는 비극적 영웅으로 재조명한 작품이다. 국립 극단 200회 공연과 국립극장 남산 이전 30주년을 동시에 기념하는 이번 공연은 3억원 이상이 투입해 음악과 의상, 조명 등 모든 면에서 뮤지컬 못지 않은 대형극으로 꾸며질 예정이다.국립극단 기념 공연작으로 '문제적 인간, 연산'을 선택한 데 대해 극단장 박상규씨는 "굳이 초연이냐, 아니냐를 가릴 필요 없이 작품 자체로서 좋은 것을 골랐다"며 "최고의 연기력을 자랑하는 국립 극단 배우들과 빼어난 연출가 이윤택이 만난 만큼 최고의 작품을 관객에게 보여줄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했다.
여섯 명의 훈구 대신으로 대표되는 완강한 기존 질서와 이에 희생된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 앞에서 갈등하는 연산이 윤씨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궐내에서 보란 듯 대왕굿을 벌이는 대목은 작품 전체를 통틀어 압권이다. 이윤택이 추구하는 샤머니즘적 세계관은 신들린 듯한 배우들의 연기와 머리를 쭈뼛하게 만드는 굿 장단으로 형상화된다. "글 배우고 칼 찬 놈들이 설치면서 이 세상은 타락했다. 하늘의 기운을 가리고 저승의 통로를 막은 놈들이 아웅다웅 헐뜯고 씹고 뒤통수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며 무당이 되기를 자처하는 연산을 보고 있노라면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한 인간의 내면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2000년 로마 네로 황제를 다룬 '브리타니쿠스'에서 네로 역을 맞아 눈길을 끈 이상직은 유인촌에 비해 덜 무겁고, 부드러워진 연산을 보여준다. '허구한 날 잔병치레로 엄마 치마폭에 싸여 살던', 유약하지만 내면에 광기를 숨긴 연산의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같이 무덤으로 가자'고 덤비는 충신 처선 역을 맡은 김재건의 열연도 볼 만하다. 성종 역의 신구, 인수 대비역의 백성희, 육대신 역을 맡아 때로는 완고하고 때로는 코믹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민호, 오영수, 이문수, 문영수, 최상설, 김종구 등 원로 연기자들의 연기도 빛난다.
원작자이자 연출을 맞은 이윤택은 "연산이 처한 상황과 오늘날의 정치 상황이 놀라우리 만치 흡사하다"며 "더러운 한 세상 쓸어 버리고 새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연산이 결국 자기 스스로의 독선으로 무너지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오늘날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재공연의 의의를 밝혔다. 공연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11일부터 21일까지 평일 저녁 7시30분, 토·일요일 오후 4시. (02)2271―1741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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