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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여성학자 권인숙으로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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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여성학자 권인숙으로 불러주세요"

입력
2003.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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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경기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이자 노동운동가로 군사독재에 맞섰던 권인숙(39)씨가 명지대 교수로 임명돼 여성학을 가르치게 됐다.3일 오후 남가좌동 명지대 학생회관 9층 교수실에서 권씨는 깔끔한 검은색 투피스 정장 차림으로 기자를 맞았다. 1일 명지대 교육학습개발원 교수로 임용된 권씨는 모국에서 학생들에게 여성학을 가르친다는 설레임으로 얼굴에 생기가 넘쳤다. 정식 임용에 앞서 25일 첫 강의를 시작한 권씨는 이날도 오후 강의를 준비하느라 한창 바쁜 와중이었다. 이번 학기부터 서울과 용인캠퍼스를 오가며 '여성과 현대사회', '결혼과 가족'등 교양강좌 2과목을 맡아 가르치게 된 권씨는 "무엇보다 한국에서 우리나라 말로 여성학을 강의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1994년 여성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지 9년 만에 국내 강단에 서게 된 그는 200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클라크대에서 '군사화된 여성의식과 문화'라는 논문으로 여성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최근까지 사우스플로리다 주립대에서 여성학을 가르쳐왔다.

그는 모국에서 교수직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무엇보다 한국에서 한국여성의 현실을 공부해보고 싶은 바람이 간절했다"며 "미국 학생들이 바라는 미국 사회의 여성, 인종, 성도덕 문제들을 다루기에는 한국인 여성학 교수로서 사회문화적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도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여성과 군사주의, 노동자라는 주제를 보다 심층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라는 권씨는 "앞으로 세계화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며 "한국사회의 여성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내 조선족 여성들이 겪어온 삶을 통해 세계화 물결이 여성들에게 끼치는 영향 등 연구의 폭을 차츰 넓혀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여성학의 발전상에 대해 "여성학 연구자의 숫자, 연구내용, 논문 등이 크게 늘고 여성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등 양적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한 뒤 "미국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살려 한국 여성학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주 강의 소감에 대해 묻자 "86년 성고문 사건을 아는 학생들이 드물지만 앞으로 강의 중에 80년대 당시 얘기도 풀어나갈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한번은 한 남학생이 '남자로서 여성학 수업을 수강신청했으니 가산점을 달라'고 했으나 웃으며 거절했다"고 에피소드를 털어놓기도 했다.

노동운동가란 멍에를 벗어 던지고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여성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던 그는 앞으로 '학자 권인숙'으로 기억되길 바랬다. 그는 과거의 '투사', '성폭력 사건'의 주인공으로 남은 이미지에 대해 묻자 "제가 지난 10년 동안 그렇게 살았나요"라며 반문한 뒤 "앞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여성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남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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