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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표준적 민주주의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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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표준적 민주주의를 향하여

입력
2003.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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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출범 이래 우리는 크고 작은 규모의 반북 시위를 몇 차례 목격했다. 일부 기독교 세력과 한나라당의 지지·격려 속에 이뤄진 이 시위들은 북한과 정부 그리고 평화 세력에 대한 증오를 여과 없이 표출했고, 이 '관리되지 않은 증오'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기자는 그런 우려에 공감하는 한편, 최근의 반북 시위에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보기도 한다.널리 지적되었듯, 최근의 반북 시위는 군사 정부 시절의 반북 시위와 달리 관제 시위가 아니라 시민들의 의사(擬似)자발적 시위다. 다시 말해, 그 동원의 주체가 국가가 아니라 민간 단체들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대한민국 국가의 권력 핵심부와 냉전 극우 세력이 분리되고 갈등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극우가 해묵은 국가 체제에서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오는 데만 정부 수립 이후 반세기가 걸렸다.

극우가 국가 체제에서 사회정치적 운동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적 좌우파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협력적 경쟁을 실천할 최소한의 발판이 마련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민주주의적 우파는 노무현 정부와 민주당 둘레의 세력 그리고 자유주의적 언론을 가리키고, 민주주의적 좌파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둘레의 세력을 가리킨다.

최근의 반북 시위를 주도한 세력이나 한나라당 그리고 일부 과점 신문은 민주주의적 우파가 아니라 극우파다. 왜 그런가? 이들이 국가보안법의 수호천사를 자임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우파와 극우파를 구별하는 가장 미더운 시금석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태도다.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악법의 존치를 주장하는 세력은 좌우를 불문하고 민주주의적이랄 수 없다. 인공기를 불태우며 자신들의 거룩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일부 과점 신문 역시, 자신들이 반민주적·반사회적 극우파가 아니라 민주주의적 우파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표현의 자유를 옥죄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외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좌파라는 말은 아직도 낙인의 언어다. 물론 급진적 좌파라는 자기 규정을 훈장처럼 뽐내며 실제로는 부르주아적 습속을 실천하는, 몸과 머리가 따로 노는 사람들이 대학 강단 일각에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치권을 포함한 한국 사회 일반에서 좌파라는 말은 아직 부정적 어휘다. 이제 이 좌파라는 말을 복권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의 봉건적 가산국가를 이끄는 세력을 좌익 정권이라고 부르는 잘못된 관행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과도한 국제주의나 평등주의의 실천과도 무관하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은 극좌 정권도 아니다. 반민주적 지도자 원리로 수렴되는 민족주의에, 사실은 국가주의에 이끌린다는 점에서 북한은 가장 완고한 우익 국가, 곧 극우 국가라 할 만하다. 국적이 다른 극우파들이 서로 증오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초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사이의 유고 내전은 왕년의 공산주의자였던 두 극우 국가주의자, 곧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프란요 투즈만 사이의 증오의 경연장이었다. 북한 극우 정권에 대한 남한 극우 세력의 증오도 이해할 만하다.

한국의 사회정치적 지형에 아직도 유사 파시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는 터라, 민주주의적 좌파의 힘은 너무 미약하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더 많은 좌파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학 강단만이 아니라 정치권과 일터와 시민사회에서 더 많은 좌파가 나와 복지와 연대 같은 좌파적 가치를 외쳐야 한다. 그래서 자유와 자율을 외치는 민주주의적 우파와 더불어 극우파와 싸우며, 이념적 정규 분포를 지닌 표준적 민주주의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향한 이 도약의 결정적 디딤돌은 국가보안법의 폐지다.

고 종 석 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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