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 9월4일 프랑스 사회학자 오귀스트 콩트가 파리에서 작고했다. 59세였다. 몽펠리에 출신의 콩트는 오늘날 우리가 사회학이라고 부르는 근대 학문의 초석을 놓았다. 콩트는 사회 현상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이 학문을 사회물리학이라고 부르고, 이를 사회질서의 원리를 분석하는 사회정학과, 사회진보의 원리를 분석하는 사회동학으로 나누었다. '물리학' '정학' '동학' 같은 용어는 콩트가 자연과학의 실증적·경험적 접근법을 사회과학에 원용하려 했다는 것을 뜻한다. 거기에는 그의 학문적 출발점이 파리 이공대학(에콜폴리테크니크)이었다는 점도 은연중에 작용했는지 모른다. 콩트는 이 학교에서 교수와의 불화로 퇴학 당했다.그의 대표적 저서가 '실증철학 강의'이기도 하거니와, 콩트는 그 때까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의 주류적 방법이었던 추상적 사변을 삼가고 경험적 관찰을 통한 실증을 실천하는 것이 참다운 지식 생산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콩트는 이 책에서 유명한 지식 단계설을 내놓았으니, 신학적 단계·형이상학적 단계·실증적 단계가 그것이다. 콩트가 보기에 과학 정신이란 실증주의 정신이었다. 되풀이되는 사실들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이 사실들을 질서화하는 불변의 법칙을 발견하는 실증적 단계에서 비로소 참다운 학문이 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콩트가 던져놓은 실증주의라는 화두는 20세기 후반까지도 사회과학논쟁의 연료로 쓰였으니, 아도르노·하버마스 등 프랑크푸르트학파와 칼 포퍼 사이에 벌어진 실증주의 논쟁이 그 예다.
사회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을 동일시함으로써, 콩트는 사회를 생물유기체와 비교하며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사회유기체설의 창시자가 되었다. 사회유기체설은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를 통해 다윈주의와 결합하며 19세기 말 이래 우익적 세계관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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